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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서도 정찰제 왜 떳떳이 못 하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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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충청도 청주에 사는 친구의「아파트」에서 저녁을 먹고 그 집 식구들과 같이 고향 청주시내 구경을 하기 위하여 밖으로 나오는데 「아파트」 문을 잠그지 않길래 『문단속을 안 해도 되나』걱정스러워서 물었다.
친구는 『괜찮아, 청주에는 도둑이 없어. 충청도 양반을 모르나』한다.
충청도 양반이란 말은 옛날부터 있지만 그것도 개념으로서의 충청도 사람을 말하는 것이지 그곳에도 별의별 사람이 다 있게 마련인데 이 각박한 세상에 문단속을 안 해도 살수 있다는 사실은 불신시대를 살아가는 나에게는「쇼킹」하게 들렸다.
불확실성의 시대니, 단절의 시대니, 또 불신의 시대니 하는 용어가 많이 쓰이는 서글픈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사회학적으로는 다 그럴만한 필연적인 이유가 있겠으나 어쨌든 우리는 우울한 시대에 살고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이 글 자체가 또 독자들에게 불신을 당하지나 않을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불신은 또 다른 불신을 낳게 되고… 마침내 우리는 고독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울하다거나 고독하다거나 하는 부정적 사고에서는 아무 것도 생산될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하고 요구되는 것은 걱정과 실망이 아니라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한치의 노력, 그것일 것이다. 정치나 경제나 교육이나 종교 할 것 없이 저마다의 노력, 그것만 이 소중한 것이다.
경제가 발전하고 소득이 높아지고 소비생활이 전에 비해 중요해졌지만 계층간에 불신의 풍조가 커간다면 우리는 모래를 씹는 듯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1백년, 2백년 사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살벌하게 살아야할 이유가 없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분개하고 기분이 상하고 하는 것은 대개의 경우 일상적인 사소한 일에서 비롯된다.
집에서 으래 쓰던 「토스터」가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여 퇴근길에 이름이 드높은 유명 「메이커」의 대리점에 가서 새것을 샀다. 집에 가서 포장을 뜯고 플러그에 꽂았더니 한쪽에는 불이 오는데 다른 한쪽은 무소식이다. 불량품이었다. 그래서 전화를 걸었더니 가져와서 바꾸어가라는 점원의 사무적인 대답이었다 .또 차를 타고 가서 바꾸어와서 쓰고 있다.
아무리 유명 「메이커」라 할지라도 수만개의 제품 중에는 더러 불량품이 있을 수 있겠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 불량품을 가져가서 바꾸어 오는 과정에서의 그 회사직원의 태도다. 미안하다는 한마디의 말도 없었다. 그 점원이 만약에 『미안합니다.
워낙 제품이 많아 더러 그럴 수 있으니 양해해 주십시오』란 간단한 말만했더라면 내가 겪은 심리적 불쾌감, 오가는 시간과 금전의 낭비, 이런 것이 말끔히 가셨을 것이다.
그 직원의 개인적인 교양의 문제라고 하면 그만이지만 무책임이거나 비문화적인 배경의 결과라면 용서할 수 없는 악덕이다. 이런 이야기를 어느 회사의 상무인가 전무를 하는 친구에게 했더니『자네는 학교선생을 오래 하더니 사람이 쩨쩨해졌어. 더 큰 일이 많은데 그런 자질구례한 일에 신경을 쓰나』하면서 나의 태도를 비난한다. 그것도 어느 정도 인정은 하지만 그래도 불신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자기 일에 책임을 져야하고 도리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져야 할 것이라는 나의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얼마전에 「유럽」여러 나라의 고관부부가 내한 한 일이 있다. 귀국하면서 선물을 사기 위해서인지 서울에는 값을 깎는 시장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어디냐』고 묻는다. 그 사람의 위치로 보나 처지를 보아서 백화점에 가서 「쇼핑」을 할 것 같은데 굳이 동대문시장이나 남대문시장으로 가려고한다. 소비절약이니 근검절약이라는 것이 서양사람들에게는 몸에 밴 생리인 듯하다. 동대문시장에 가더니 물건을 사면서 열심히 값을 깎는다. 통역을 하면서도 얼굴이 뜨거워질 지경이다. 장사 아주머니도 『에그, 한국 사람보다 더 깎는다』고 투덜거린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깎아서 산 물건이 과연 백화점보다 싼 것인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그런 태도가 아니라 정찰제를 철저하게 실시해야 하겠다는 말이다. 정찰제에 대한 것은 벌써 오래 전부터 권장하고 있으나 아직도 몇몇 백화점이나 큰 점포 외에는 제대로 실시되지 않고 있다.
물건을 살 때 불필요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미국에서는 자그마한 구멍가게에서도 모두 정가를 표시하고 있는 것은 다 아는 일이다.
어지간한 음식점이나 술집에서도 「메뉴」라고 써 붙이고 있지만 거개는「타이틀」만 있고 값은 표시돼 있지 않은 곳이 허다하다. 왜 정정당당하게 못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우리사회의 불신사조의 근원이 이런 데서도 나오고있는 것 같다.
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지만 우리의 수준으로 보아 이제는 정찰제를 철저하게 실시해서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불신사조를 조금이라도 제거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곤한다.
6·25사변 때 같이 싸우던 미국전우가 오래간만에 우리 나라에 와서 같이 「콜·택시」를 타고 시내를 돌아다녔다. 횡단보도가 아닌 데를 곡예사처럼 달려 빠져나가는 보행인을 보고 하는 말이『한국동란 때와 비교하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한 것은 듣던 바 그대로인데 서울의 교통질서를 보니 아직도 멀었다』고 한다.
대체로 외국사람들은 딴 나라에 가서 흉을 보는 일이 거의 없는데 이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서울의 교통질서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이상으로 엉망이어서 몹시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이런 것은 불신사조와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겠으나 그러나 우리들의 질서감각이 더 예민해지면 훨씬 살기 좋은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불신사조라는 것은 하나의 시대사조이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나라에 국한되는것도 아니겠고, 또 그 요인도 단순치가 않아서 그 치유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역사적인 배경, 사회학적 발생요인, 정치·경제적인 요인 등 복합적인 현상일 것이다.
자기 일에 책임을 지고, 도매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시민들의 질서감정을 제고시킴으로써 이 불신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고달픈 생활에 다소의 윤기를 주고자 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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