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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하임」「글라이스틴」발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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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남북대화의 재개를 위한 우리측의 여러가지 노력이 북한의 완고한 강경자세로 말미암아 촌보의 진전도 없는 가운데 한반도문제에 관해 12일 나온 「글라이스틴」주한미대사의 발언과 「발트하임」「유엔」사무총장의 발언은 몇 가지 점에서 우리의 주목을 끈다.
당국자간 대화를 갖자는 우리측 제의를 거부한데 이어 북한이 한미양국의 3당국회의제의를 거듭 거부했고, 「발트하임」「유엔」사무총장의 중재제의마저 거부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런데도 「발토하임」총장이 자기를 통해 남북한이 간접접촉을 하고있다고 밝힌 것을 보면 그 동안 북한이 혹 이중적인 입장을 취해왔거나 아니라면 「유엔」에서의 「간접접촉」 이 실은 별 중요한 의미를 갖지 못했던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북한측은 「유엔」의 중재노력에 대한 거부의사를 「유엔」에 공식으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발토하임」총장을 통해 다소간 우리측과 간접적인 접촉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들의 어떤 자세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곤 보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우리는「유엔」이든 어디서든 남북대화가 재개되기를 바라고, 당장 직접대화가 어렵다면 간접접촉이라도 유지되기를 희망하는 입장에서「발트하임」총장의 거중노력에 한 가닥 기대를 거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엔」의 중재노력에 북한이 무성의하다고해서 또는 실핵성이 적다고 해서 우리마저 무성의해서는 안될 것이며, 오히려 대화재개를 위한 우리의 성의를「유엔」이 충분히 인식하도록 외교적 노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글라이스틴」대사의 발언은 이처럼 막혀있는 남북한관계의 장내에 대해 몇 가지 구체적인 의견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그는 우선 앞으로 10년간에도 한반도평화를 위협할 지정학적 변화는 예상되지 않는다고 전망하면서 남북이 상대방을 각기 좀 더 적극적으로 「뇌체」로 인정할 것, 과중한 국방비부담을 덜기 위한 군비감축, 무역거래 및 상호여행 허용 등 구체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일·중공·소 등 4강의 남북한 교차승인 필요성을 지적하고 주한미대사로서는 처음으로 북한을 그들의 공식호칭인 DPRK(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로 불러 주목을 끌었다.
이러한 그의 발언은 대부분 우리정부도 단계적인 대북접촉을 통해 도달코차 하는 목표라는 점에서 합치되는 내용이긴 하나 부분적으로는 지나친 이상론. 상조론으로 받아들여질 우려가 불무함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우선 이런 모든 문제의 실현성 여부가 거의 전적으로 북한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상호 실체로서 인정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우리와는 달리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협상논 등을 들고 나오는 고식적 자세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고, 군비문제만 해도 군사력증강으로 긴장을 높이고 무력통일의 꿈을 여태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이산가족의 안부확인 조차 거부하는 그들이 경제교류나 여행허용에 응할리가 있겠는가.
따라서 한반도평화의 요체는 군사적으로나 국제정치적으로나 북이 남을 무친할 수 없다는 현실적 인식을 갖게 하는 것뿐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의 독자적인 능력강화와 우방과의 유대강화가 필요한 것이다.
이번에「글라이스틴」대사가 북한을 DPRK로 부른 것은 비록 전례가 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주재국 대사라는 입장에 비추어 볼 때 우리에겐 서운한 일이 아닐 수 없으며, 혹시 호칭변경에 어떤 다른 합의는 없는지를 주지코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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