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전쟁은 신을 생각하게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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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신을 생각하게 한다/둔야 미카일 등 이라크 시인 5명, 고은 등 한국 문인 1백22명 공저/화남, 1만2천원

"전쟁은/ 얼마나 심각하며/활력적이고/교묘한지!//아침 일찍/그건 사이렌을 깨우고/앰뷸런스를 사방으로 보내고/시체들을 공중에 흔들고(중략)//전쟁은 밤낮 없이 무자비해./그건 독재자들에게 긴 연설을 하도록 만들고/장군들에게 훈장을 주고/시인들에게 소재를 제공한다."

바그다드 출신의 젊은 여성 시인 둔야 미카일은 참혹하게 점령당하고 있는 고향을 바라보며 쓴 위 시 '전쟁은 힘들어'에서 전쟁은 '교묘하고 무자비하다'고 한다.그리고 점령군들에게는 승리의 '훈장'을, 시인들에게는 반전과 평화의 '소재'를 준다고 한다.

이라크 대표 시인들과 한국 문인들의 반전.평화를 바라는 시.소설.평론.르포 등을 신작 위주로 편집한 이 책은 우선 이라크 함락보다 빠르게 출간된 기획력이 놀랍다.

또 이라크 전쟁을 바라보는 우리 문인들의 양심을 작품 수준이 떠받치며 우리 참여문학의 응전력과 수준의 진일보한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반대하라./지금 사막은 잠들지 못한다./지금 메소포타미아의 아이와 어머니는/외진 울음도 나누지 못하고 죽어간다./기원전 유적은 동트면 또 잿더미/지금 지구는 야만의 행성이 되어버렸다.//(중략)//우리들이 세운 기둥마다 새겼던 말/정의와 자유/해방/세계평화/기어이 찾아야 할 그 말들을 도둑맞았다."

1970년대부터 한국의 민주화를 외치다 수년 전부터는 세계를 찾아다니며 평화의 시를 읊고 있는 고은 시인의 시에는 정의.자유.해방.평화가 심장 깊숙한 체험으로, 통 큰 울림으로 들어 있다.

고씨는 위 시 '나의 편지'를 '아 오늘의 이라크는 내일의 어디인가'라 물으며 끝을 맺고 있다. 북한이든,설령 다른 곳에서든 또 비명도 못 지르고 죽어갈 인명들의 죽임에 파병으로서 동참해야 하는가 묻고 있는 것이다.

해서 문학평론가 염무웅씨는 '파병은 국민적 선택이 아니다'는 산문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전략적 선택'으로서의 파병 결정은 국민적 선택과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파병을 통해 우리가 얻는 것은 전후 복구사업이라는 이름의 이권놀음 뒷전에서 챙기는 몇 푼의 돈일 것이고 잃는 것은 전쟁을 반대하는 온 세계 양심들의 존중심과 어렵게 쌓아올린 남북의 신뢰,그리고 국민들의 도덕적 이성"이라고.

"세상은 '힘의 감동'을 믿지만 시인은 '감동의 힘'을 믿는 존재"라며 이라크로 향하다 국경 봉쇄로 요르단 암만에 머무르고 있는 박노해 시인의 현장 르포는 감동으로 반전.평화를 전한다.

"전쟁의 공포와 고통에 울부짖는 아이들 곁에서 그것을 함께 느끼고 함께 있어 주는 것, 그것이 전쟁터로 달려온 제 마음"이란 박씨는 "세상을 바꾸는 것은 첨단 무기의 힘이 아니라 지극히 작고 부드러운 사랑임을 보여주고 싶다"고 현장에서 전하고 있다.

"너희 죽음 앞에 촛불을 든 손이/왜 이리도 떨리는가/너희 이름 부르는 입술이/숨도 제대로 못 내쉬는 내가/촛불이라니 아,조국은/너희에게 해줄 것이 없구나/촛불 하나 지킬 힘이 없구나//그런 나라도 조국이라고/너희 작은 가슴 속에 심어놓고/나라 사랑의 길을 또박또박 걷고 있을 때/무한궤도의 질주가 너희를 부수었구나."

강영환 시인은 시 '촛불을 켜들고'에서 지난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죽은 두 소녀를 추모하는 촛불을 켜들고 있다.

그러나 이 촛불은 지금 희생되고 있는 이라크를 위한 추모일 수 있으며, 때문에 반전.평화의 염원을 한데 모은 이 책은 도덕성을 상실한 자본주의, 미국의 '무한궤도의 질주'에 대한 양심의 저항으로 읽힌다.

이경철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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