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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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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나라 보물로는 두 번째라는 보신각이 오늘 광복절을 맞아 새로 준공되었다.
이게 몇번째의 준공식일까. 여덟번째? 아니면 아홉번째? 마치 옛 우리네 역사라도 상징하는듯 그것은 노상 이리 밀리고 저리쫓기는 기구한 팔자를 지녔었다.
보신각이 태어나기는 태조 4년인 서기1305년. 그때는 지금의 인사동어귀에 있었다고 한다. 그때는 이름도 종각.
그게 세종때에 지금의 종로대거리 한복판으로 옮겨지고 이름도 인층루로 바꾸어졌다. 단층에서 2층으로, 그것도 동서로 5간, 남북으로 4간의 대각으로 바꾸어진 것도 이때부터있다.
이조초엔 서울에 거종이 다섯 개 있었다. 당초에 종각에 달려있던 그중의 하나는 임진란에 녹아 버렸다.
태종때 만든 두번째 종은 광화문루에 달려 있었다. 그것도 임진의 병화로 녹아 없어졌다.
세번째 세조때에 경복궁안에 달려있던 종은 요행 임진란에 살아남았으나 파종이 된 끝에 대원군이 이를 녹여서 엽전으로 만들어 썼다.
네번째 종은 역시 세조때 정동흥천사에 달려있었다. 그후 원각사로 옮겨가고 다시 동대문에서 광화문으로 전전하더니 지금은 박물관에 남아있다.
다섯번째 종이 지금 남아있는 종이다. 여기엔 성화4년2월이라고 분명히 새겨져 있다. 곧 세조13년때것이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보신각에 달려 있던 종은 아니지만 지금 나이가 5백12세나 된것임엔 들림이 없다.
따라서 보물2호 라고 할때에는 어디까지나 이 종만을 뜻한다. 보신각 건물은 결코 아니다.
도시 문화재의 경우 전체의 5할이상을 새 건축자재로 보수하면 그 가치를 잃게 된다.
어차피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없을바에야 기왕이면 호화롭고 우람스러울수록 좋다.
그러나 4억원 가까이나 큰 돈을 들일만한 가치가 있겠느냐는 의문은 남는다.
전혀 자랑스럽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고. 자리도 옛 그대로가 아니니 역사성도 희박한 것이다.
「시멘트」와 철근, 그리고 요란스런 단청으로 잔뜩 분을 뒤집어쓴 새보신각에서는 문화재다운 맛은커녕 전통성조차 전혀 느껴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새 보신각주변을 도심공원으로 늘린 것은 백번 잘한일이다.
그러나 기왕이면 좀더 경내를 넓혔으면 좋았을걸 그랬다.
고작 8백50평으로 넓혔다면 그저 눈요깃거리밖에 안된다. 공원이라기에는 너무도 옹색스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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