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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고통스럽다 해서 긴축풀면|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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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국경제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한 내외경제학자 여섯분의 토론이 끝났다. 마지막으로 한국은행 신병현총재가 한국경제의 현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금융통화정책을 어떻게 끌고갈 것인가에 대해 본사 최우석 경제부장과의 대담을 통해 알아본다.

<편집자주>

<대담:최우석(중앙일보 경제부장)>
-요즘의 경제동향을 어떻게 보십니까. 당장 물가강세 속에서 경기는 침체되고 또 실업문제까지 일어나니 사태가 상당히 심각한 것이 아니냐하는 견해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항상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비교의 기준을 어디다 두느냐 하는 것입니다. 유례없는 호황을 보였던 작년이 기준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지금의 한국경제가 어려운 국면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정책방향을 바꾸어야할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작년의 과열경기가 냉각되는데다 「오일·쇼크」가 겹쳐 불황감을 더 심하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개별기업에 따라선 무척 어려운데도 있지만 국민경제 전체로 볼 때 긍정적으로 봐주어야 할점도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작년엔 모두가 허공에 뜬 기분들이었는데 이것이 많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특히 기업들이 어려움 속에서 재무구조 개선에 노력하고 투자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보이는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입니다.
어찌보면 금년초 안정화 시책을 시작할 때 기대했던 여러 효과들이 나타난다고도 볼수 있지요. 어느 정책이고 그것이 시행되면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입니다. 안정화시책의 효과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면이 강조되는 느낌이 있습니다.
-긴축도 좋지만 「오버·킬」(over-kill)하는 것이 아니냐하는 논의도 있습니다. 특히 「오일·쇼크」로 경기후퇴가 급속히 진전되고 있으니 긴축을 풀어 경기자극을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금융 지원 등으로|수출늘릴단계 지나>
▲금년들어 안정화시책을 강행하니 기업에 따라선 상당히 고통스러운 점도 있겠지만 강도가 너무 지나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통화지표나 부도율등을 보면 기업이 못견딜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잘알수 있을 것입니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이제까지는 이사정 저사정을 다 감안한 부드러운 긴축이지 본격적인 긴축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할수 있습니다.
통화란 늘 좀 부족하다 싶어야지 넉넉하면 탈이 나는 것입니다.
긴축은 하되 경제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을만큼 통화를 공급해왔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란 뜻입니다.
-말씀하시는 것이 무척 탄력적인데 그러면 금년 총통화 증가율 25%도 탄력적으로 운용하시겠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일단 정한 방향은 다소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지켜야지요. 그러나 목표에 너무 집착하여 정말 경제활동에 지장을 주어선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경제는 산동물과 같은 것이어서 조심스럽게 다뤄야 합니다. 달걀을 쥘 때 너무 허술하면 떨어지고 꼭쥐면 터지는 것과 같은 원리지요.
통화공급을 다소 신축성있게 운용한다해서 안정화의 기본 방향만은 절대로 후퇴해선 안됩니다.
경제안정화는 언제해도 해야할것이 아닙니까. 지금 고통스럽다해서 긴축을 풀면 다음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하니 이제까지 해놓은 것이 수포로 돌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안정기반을 정착화못시킨 것도 그때 그때의 고통을 못이겨 긴축을 지그시 계속하지 못하고 너무 단기간으로 끝냈기 때문입니다.
우리경제가 앞으로 지속성장을 하려면 안정기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이번에 그것을 한번 이뤄보려는 것이지요. 비상한 각오와 어려움이 있겠지만 어차피 해야할 일이니 「컨센서스」를 갖고 참고 넘기자하는 것입니다.

<안정기반 정착되면|수출·고용자동해결>
-가뜩이나 수출이 안되고 「오일·쇼크」로 경기가 나쁜데 긴축마저 강행하니 더 견디기 어렵지 않느냐하는 원망이 많은 것 같습니다.
▲긴축을 하는 것은 수출을 막고 경기를 나쁘게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그것을 좋게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긴축을 풀어서 수출과 경기자 당장 잘된다면 긴축은 풀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금융지원으로 수출을 늘리는 단계는 지났습니다. 수출이 둔화하는 것은 물가가 올라 수출경쟁력이 떨어진데 근본이유가 있습니다. 당장은 수출과 경기에 다소 압박이 가더라도 안정기반을 꾸준히 다져가면 수출경쟁력이 회복되어 수출이 저절로 늘고 이에 자극되어 경기와 고용도 좋아지게 된다는 원리입니다.
오늘날 서독이나 대만이 물가안정 속에서 높은 성장을 계속할수 있는 것도 안정기반의 구축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원리를 잊은채 당장의 지원이나 「캄프르」주사식의 시책으로 수출과 경기를 일으킬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수출을 늘리기위해 환율을 인상하면 어떠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환율인상이 수출을 늘리고 「오일·쇼크」속에서 국제수지를 방어하는 보편적인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교과서적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가뜩이나 유가인상등으로 물가의 충격이 심한데 환율을 올렸다간 어떤 사태가 올지 모릅니다. 우리나라는 수입원자재의 비중이 높은데다 대외부채가 많아 환율인상의 「마이너스」효과가 너무 큽니다. 잘못하면 물가와 환율의 악순환만 가져옵니다. 또 대외적인 관계에서 보더라도 환율인상이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가 모두 「오일·쇼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우리만이 평가절하로 이에서 빠져나가겠다고 하면 국제적으로 지탄을 받습니다.
우리의 무역비중이 세계전체의 1%를 넘었으니 환율문제도 대외적인 관계를 고려해야 합니다. 국제수지 전망이 불투명하지만 환율인상이 국제적으로 납득받을만큼 심각한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기업부담을 줄이기 위하여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인플레」속의 저축보호를 위해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론도 있는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다.
▲요즘같이 국제적인 고금리 추세에서 금리를 내린다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흔히 말하는 대로 금리의 국제수준화를 이룩하려면 수출금융 같은 것은 올려야지요.
그러나 수출채산성 문제가 있어 지금 수출금융금리를 올릴수는 없습니다.
저축증대를 위해 금리를 올려야한다는 주장은 이해는 할수 있으나 현실적으론 불가능합니다.
저축금리를 올리면 대출금리도 같이 올려야하는데 우리나라의 대출중 금리를 손댈수 있는 일반대출의 비중은 높지 않습니다.
대출중 정책금융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금리를 올리면 그 부담이 제한된 일반금융으로 몰리는데 그것을 할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여러 여건으로보아 지금이 금리를 올릴 시기가 아닙니다.
-「오일·쇼크」로 인한 타격에서 벗어나려면 얼마나 걸릴것으로 봅니까.
▲적응하기에 달렸겠지만 앞으로 2~3년은 잡아야지요.
너무 서두르지 말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통적인 방법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자유시장경제에 신뢰를 갖고, 가격기능을 살려 자율적인 조절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동안 국민들도 괴롭겠지만 참아야겠지요. 유가 인상으로 GNP의 약2%가 산유국으로 이전되니 그만큼 누가 부담해도 해야 할것이 아닙니까.
유가인상으로 물가가 올랐으니 임금을 올려줘야 할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벌써 나오는데 이것은 유가인상 부담을 모두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겠다는 뜻입니다. 그 부담을 골고루 나눠부담해야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쌓아온 저력이 있으므로 2~4년만 합심하여 고생하면 다시 활력을 회복할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중동건설시장과 수출에서 돌파구를 찾아야겠지요.

<가격기능을 살려서|자율조절 이뤄져야>
-과거에도 몇번이나 긴축을 시도하여 기업들에도 긴축적응 태세를 갖추도록 해놓고 곧 긴축을 푸는 바람에 투자를 줄이고 재무구조를 개선한 기업들만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지않았습니다. 이번엔 그런일이 없겠습니까.
▲그런일이 없도록 다같이 노력해야지요. 긴축같은 인기없는 정책을 쓸땐 눈을 딱감고 소신대로 밀어붙이는 굳은 확신이 필요한데 과거엔 그게 좀 미흡했던것 같습니다.
-신총재께선 어디까지나 안정론자이시군요. 성장론자들로부터 원망이 많겠습니다.
▲ 성장론자나 안정론자나 지향하는바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안정없는 성장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다. 지금 안정하자는것도 앞으로 계속해서 성장하기위해 기반을 굳히자는 것이지 안정자체를 위한 것은 아닙니다.
안정이 최선돼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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