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7)<남기고 싶은 이야기들>불교근세백년 -강석주|종무원 설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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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l920년에 시작한 불교청년회의 유신운동에 자극을 받은 불교계는 어떠한 형태로든 전국의 사찰과 승려를 강력하게 통할하는 기관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또 당시 월정사 주지 홍포룡 스님이 지적했듯이 타종교로부터 받은 자극도 있었다. 즉 『근래 조선의 각 종교가 경성에 근거를 두고 광대한 설비와 많은 사업으로 세상을 향하여 그 종교의 입각지를 소개하고자 노력하는데 오직 불교만은 보잘 것이 없으므로』 불교사업을 크게 일으키고 중앙학림 등 교육기관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기관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30분산 주지회의가 1920년 연말회의에서 새로 계획하는 사업과 함께 연합사무소를 종무원으로 변경하겠다는 신청서를 총독부에 제출했으나 총독부 종무과에서는 사찰령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허가할 수 없다는 뜻을 비쳤다.
그러나 시세의 나아감과 교단의 안팎에서 받은 자극으로 인해 30분산 주지회의는 『총독부의 허가가 되건 안되건 그것은 둘째 문제이며, 첫째는 우리 조선의 승려도 어떠한 제도 아래서든지 한 덩어리가 되어 조선문학사업에 공헌하고 조선불교로 하여금 세계적 조류에 순응하고자』 종무원을 해야 한다고 홍포룡 스님은 외쳤다.
그리하여 총독부의 의사여하에 구애받지 않고 종무원을 만들기로 1921년 1월 30본산 주지회의는 결의하고 새 종무원장에 연합사무소 위원장인 홍포룡 스님을 선출했다.
이것은 총독부 의사를 따르지 않은 30본산 주지들의 최초의 행동이었다.
새 종무원장에 선출된 홍포룡 스님은 종무원의 성격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30본산 연합사무소는 사찰령에 의해. 정해진 본산이 모여 현안문제를 협의하는 기구이며 어느 본산이 특별한 권한을 갖고 통솔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새로 설치하는 종무원은 경성에 두어 각 도의 사찰이 그 명령에 따르도록 하는 제도이다.』
그리고 기능에 대해서는 4개 부서를 두었는데 서무부는 일반서무를 관리하게 하며, 재무부는 전국 각 사찰의 재산을 관리하며,
학무부는 중앙학림 등 경향의 불교청년에 대한 교육사업을 맡으며, 교무부는 포교사업을 맡도록 했다. 그리고 홍포룡 종무원장은 그의 포부를 『우리 조선사람에게 가장 급한 것이 교육이므로 종무원이 충독부에서 허가되든 안되든 그에 상관하지 않고 무엇보다 먼저 교육사업에 전력을 다하겠으며 해외에 유학생 파견도 실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종무원의 기능과 포부는 대체로 유신회의 개혁안에서 촉구되었던 것이었으므로 유신회로서는 그들의 의사가 실현될 것으로 기대가 컸다. 유신회와 입장을 같이하는 불교중앙학림(현 동국대의 전신)의 학승들에게 있어서도 기대는 컸었다. 그것은 천도교에서 경영하는 보성학교와 기독교에서 경영하는 연희·이화가 각각 전문학교로 승격하고 있던 때이므로 중앙학림도 전문학교 승격을 학생들은 바라고 있었고, 그것을 수차에 걸쳐 30본산연합사무소에 건의한 바가 있었기 때문에 그 실현을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연합사무소의 폐지와 종무원의 설치문제는 총독부의 허가를 받지 못한 채 3월에 접어들었다. 모처럼 불교 발전을 스스로 도모하기 위해 총독부의 뜻을 어기면서 결의한 종무원은 지난 3개월 사이에 별다른 업적을 쌓지 못하고 종전의 연합사무소와 다름이 없었다. 이에 3월16일 30분산 주지들은 임시총회를 갖고 불교개혁을 위한 논의를 하고자 모였으나 임원개선에서 분열의 조짐을 보이고 말았다.
즉 재무부장인 봉은사주지 김상숙 스님이 재무부장을 사임하면서 동시에 종무원을 이탈했기 때문이다. 김상숙 스님은 재무부장을 사임하는 이유로 주지회의에서 결의된 연합사무소의 경비도 징수가 어려운데 중앙학림을 비롯한 사업을 위해 돌연 30만원의 거액을 징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표면상의 이유를 들었지만, 보다 큰 이유는 『사찰령에도 없는 종부원을 조직하여 다 같은 주지사이에 전제가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며, 종래의 연합사무소를 보면 총독부 발포의 제령이 아니므로 법률상으로 구속력이 없는데도 위원장과 간부가 너무 전제적인 점으로 보아서 종무원도 전제할 것이므로 이탈한다』고 밝혔다.
한편 총독부의 입장은 그와는 달랐다. 1922년1월의 30분산 주지회의에서 총독부 「시바다」(자전) 학무국장은 『30본산 연합제규는 불교사업을 진행하는데 편리를 도모코자 제정한 후 당국의 인가를 얻어 지금까지 시행해 내려온 것이다』고 단정하고 있다. 이 말은 종무원을 인경하지 않는 총독부의 기본방침을 드러낸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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