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금조사 받은 사르코지 "좌파 성향 판사의 음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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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니콜라 사르코지

“이게 정상적인 겁니까?”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2년간의 침묵을 깨고 2일(현지시간) 저녁 TV에 출연해서 한 말이다. 이날 오전 그는 2007년 대선 과정에서 리비아의 독재자였던 무아마르 카다피로부터 5000만 유로(689억 원)를 수수했다는 의혹과 관련, 재판 정보를 빼내기 위해 판사를 매수하고 권력을 남용한 혐의로 기소됐다.

 논란은 전직 대통령까지 지낸 그가 소환 심문을 받는 방식 대신 일반 잡범처럼 경찰서에서 15시간 구금돼 있다가 오전 2시 수사 판사 앞에서 섰다는 점이다.

 사르코지는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인권의 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나에 대해 진실이 아닌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다. 이 방송을 보고 듣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단언할 수 있다. 나는 여러분들의 믿음을 배신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나는 (프랑스)공화국의 원칙과 법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리곤 “나를 구금시설에 둔 건 망신을 주려는 의도”라고 비난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선 모두 부인했다. 카다피 건을 포함 모두 6건인데 이중 현재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로레알의 상속녀인 릴리안 베탕쿠르로부터 400만 유로(55억 원)의 불법 선거자금을 받았다는 혐의에 대해서만 소 취하된 상태다. 그는 “35년 공직 생활 동안 나만큼 사법적으로 면밀하게 조사된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나는 부끄러워할 게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부 좌파 성향의 판사와 올랑드 현 정부를 비난했다. “오늘날 사법시스템의 일부가 정치적으로 이용됐다”고 주장하면서다. 특히 이번 사건의 소관 판사 두 명 중 한 명이 좌파 성향으로 그가 대통령이던 시절에도 그에 대한 적대감을 공개적으로 피력했다는 것이다. 사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판사들과 껄끄러운 관계다. 재임 중 판사들이 지나치게 관대하다고 비판했고 그럴 때마다 판사들은 자신들의 독립성을 침해한다고 분노하곤 했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프랑스 사회의 시선은 극명하게 갈렸다. 중도 좌파 성향의 르몽드는 “새로이 부패 혐의로 기소된 건 정치적 지각 변동을 부를 만큼 심대한 사안이라고다. 기소가 (사르코지 전 대통령에겐) 재난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에겐 ‘정치적 박해’로 여겨진다. 현재 UMP는 지도자 없이 표류하고 있는 상태다. 당내 몇몇 인사를 빼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복귀해 당을 다잡아주길 기대하고 있다. 실제 8월 복귀가 유력했었다. 이번 일로 그의 복귀 스케줄이 늦춰질 것이란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영국의 가디언은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전기 작가의 말을 인용, “사르코지에 공감하는 우파 사람들은 모두 음모가 있고 그가 정치적으로 박해 받고 있다는데 동의한다. 그의 복귀를 막을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그가 개인적이고 직접적으로 불법을 저질렀다는 실질적이고 분명한 증거, 또는 재판에서 유죄 선고를 받는 것이다. 그게 없다면 누구도 불도저(사르코지 전 대통령 지칭)를 막을 수 없다”고 했다. 어찌됐든 그는 돌아온다는 얘기였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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