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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음하는 명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서울의 명동이 신음하고 있다. 유행과 젊음의 상징인 명동거리를 누비던 하루 평균 70여만 명의 인파가 최근 들어 40여만 명으로 격감했고 세계의 유행을 직수입해오던 각종 사치성업소가 절반 가량이나 휴업 또는 폐업하거나 팔려고 내놓고 있다.
불황과 소비절약 시책으로 최악의 불경기가 몰아닥치면서 명동이 중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비싼 것이 곧 귀한 물건』이라며 고객들을 끌던 양장점·양품점·양화점·이용원 등 굴지의 소비성 업소들이「쇼윈도」에 『50% 대폭 할인』의 「구걸판매」표지판을 걸어 놓고 불경기를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이다.
이 같은 혹심한 불경기는 정부당국의 금융긴축 정책으로 워낙 돈이 풀리지 않는 데다 소비절약 시책에 호응한 시민들의 알뜰 구매작전에 여름철의 비수요기까지 겹쳤기 때문.
상인들은 이대로 나가다가는 연말까지 전 소비성 업소의, 70% 이상이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불경기의 된서리를 맞고 있는 것은 양장점 4백여 개소, 양품점 80여 개소, 양화점 90여 개소와 이·미용업소 30여 개소 등.
복덕방 업자들에 따르면 지난 3월 이후 이들 업소의 20%가 휴·폐업했고, 30%가 팔려고 내놓고 있거나 업종변경을 서두르고 있다.
명동의 얼굴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양장점인 송옥도 불경기에 허덕이다 못해 지난 1일 문을 닫았다.
일제시대 서울 종로통에서 문을 열어 해방이후 명동 2가 51의2 4층「빌딩」으로 옮긴 이양장점은 50, 60년대의 명동 유행을 선도해왔다.
명동개업 35년 만에 문을 닫은 송옥 양장점 건물은 L주택에 4억여원의 전세금으로 넘어갔다. L주택은 양장점 건물을 사무실로 쓸 예정이며, 휴·폐업한 사치성 업소 자리에는 사무실이나 다방이 들어서고 있다. 불경기를 극복하려는 각 업소들의 고육지책(고육지책)도 가지가지.
『깜짝 「세일」』『소비절약 「세일」』『가계절약「세일」』『알뜰 가계「세일」』『자투리「세일」』『화끈「바겐세일」』등 갖가지 할인판매가 성행한다. 명동일대 점포의 「쇼윈도」는 온통 「바겐세일」의 딱지가 붙어있다.
K화점의 경우 『50%할인「세일」이라고 쓴 광고물을 가게 안팎에 40여장 붙여 놓았다.
유명한 E 양화점은 지난 6월 11일부터 오는 10일까지 알뜰 구매작전 기간을 설정, 여성고객에게는 양장지를, 남성에겐「와이셔츠」옷감을 1벌씩 선물로 주고 있다. 명동의 1천여개 사치성 업소들의 매상고가 하루 평균 20억원 안팎이던 것이 요즘에는 5억원에도 못 미칠 것이라는 상인들의 추계.
고객들의 구매 방법도 달라졌다. 비싼 것을 찾던 부유층 고객들도 2∼3차례 값을 깎는 등 「물건 보는 눈」이 까다로와졌고 대학생 등 젊은 여성들의 「아이·쇼핑」(구경만 하는 것)이 두드러지게 많아졌다.
M「슈즈·살롱」종업원 김재옥씨(28)는『매달 3백명 이상의 손님이 드나들었으나 6월에는 50명도 채 안 돼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라며, 값만 물어보고 돌아가는 손님이 부쩍 늘었다고 했다.
모 K의상실 주인 김재경씨(40·여)는 6평 점포의 전세금과 종업원 6명의 인건비, 운영비 등을 충당하려면 월 1백만원을 벌어야 하나 지난달은 40만원도 안됐다고 했다.
불경기의 여파는 명동에 넘실거리던 인파에도 나타났다.
경찰집계에 따르면 지난해는 하루 평균 70여만 명이 좁은 땅(0·22평방km)을 메웠으나 3월 이후에는 40여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명동파출소 (소장 박창환 경위·49)에 적발되는 보안사범도 지난해 하루 평균 15명에서 요즘은 고작 4∼5명으로 줄었다.

<김원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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