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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스타 하늘의 심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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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스타의 하늘은 끝까지 심술을 부렸다. 며칠째 수시로 장대비가 퍼붓는 등 불순하던 일기는 끝내 마스터스를 정해진 날짜에 열지 못하게 했다.


10일 밤(이하 한국시간) 개막할 예정이었던 '꿈의 구연' 마스터스 골프대회가 전날 밤부터 아침까지 내린 비로 1라운드 경기를 갖지 못한 채 순연됐다.

이에 따라 1라운드는 11일 오후 8시30분에 열리게 됐으며, 바로 이어 12일 오전 2시30분에 2라운드 경기를 갖게 됐다. 현지 날짜로 같은 날 두 라운드를 동시에 치르게 된 것이다.

대회를 주최하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 측은 간밤에 내린 비로 코스 곳곳에 물이 들어차자 물 빨아들이는 기계 6대를 동원해 물을 뽑아냈으나 코스 사정이 개선되지 않은데다 앞으로 비가 더 내릴 것으로 예보됨에 따라 1라운드 경기를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첫날 경기를 지켜보기 위해 골프장을 찾았던 3만여명의 갤러리는 실망감을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최경주(33.슈페리어)선수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하루 쉬며 차분히 컨디션을 조절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최경주는 개막 전날 열린 '파3홀 대회'에서 멋진 기량을 뽐내 많은 갤러리의 박수를 받았다.

호수를 둘러싼 9개의 파3홀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최경주는 버디 1개, 보기 1개로 이븐파를 기록했다. 순위는 중위권에 머물렀지만 최경주는 아들 호준(6)군을 캐디로 대동한 채 거의 모든 홀에서 온그린에 성공하는 안정된 기량을 과시했다. 7번홀에서 보기를 범했지만, 호수를 가로지르는 8번홀에선 1m 거리의 버디 퍼트에 성공해 이븐파로 경기를 마쳤다.

이날 최고의 인기 선수(?)는 캐디를 맡은 호준군이었다. 흰색 캐디복을 입은 호준군은 어린 나이에 힘이 부치는 듯 웨지.퍼터 등 6개의 클럽이 담긴 캐디백을 질질 끌고 다니면서도 끝까지 캐디의 임무를 완수해 갤러리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이 대회에선 파드레이그 해링턴(아일랜드)과 데이비드 톰스(미국)가 6언더파 21타를 쳐 공동 1위를 차지했다. 마스터스 역사상 파3 대회에서 공동 우승이 나오기는 1960년 이 대회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

해링턴과 톰스는 "우승해 기쁘다"면서도 그리 달갑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스터스 역사상 파3홀 대회 우승자가 정규 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거스타=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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