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부족…"마음만의 챔피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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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정순현(25)은 세계를 품에 안을 수 있는 대기는 아니었다. 정순현은 한국「복서」로는 홍수환에 이어 두번이나 세계정상도전이라는 행운을 잡았으나 실력은 행운을 따르지 못했다.
23일「카르도나」(26·콜롬비아)와의 15회전에서 정순현은 사력을 다한 정신은 칭찬할만하지만 그의 정신만큼 기량은 미흡한 것이었다.
작년 11월 12일 1차 도전 때와 똑같이 계속「레프트·잽」을 허용했고「카르도나」의 번개같은「라이트·카운터」를 대비한 작전이 하나도 없었다.
공격도 안면을 숙이고「커버」만을 한 채 무모하게 밀고 들어가 네 번이나 씨름을 하듯 서로 엉켜 쓰러질 정도였다.
정순현은「원·투」가 때때로 안면에 작렬, 흥분을 주기도 했으나 아래 위 및 연타 등 기술의 보강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정순현의 특기는「스피드」있게 짧게 받아치는「카운터」였다. 여기에 체력을 .밑받침한 근성이 있었던 것이다.
과거 홍수환과「타이를·매치」를 벌였던 일본의「가사하라」(서원우)와 상승주이던 고생근을 좌절시킨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나「카르도나」와는 신장·「리치」의 열세에다 유연성·「스피드」·노련미 등에서 하나도 점수를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런 것을 알고서도 1차도전 때보다 다른 것이라고는 씨름하듯 밀어 넘어뜨리는 것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정순현은 긴 팔에서 나오는「카르도나」의「레프트·잽」을 예상했어야 했고 유연성·「스피드」의 열세를 감안, 정석을 깬 과감성으로 결판을 냈어야했다.
정순현은 1차 도전 때도 2점 차의 근소한 판정패로 울었지만 2차전도 주심「크리스토·들러」(남아공)씨가 1점차, 부심 2명이 2점 차의 열세여서 한 단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과감한 주사위』를 던지지 못했고『강렬한 전사』에도 몸을 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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