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십자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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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반라의 한 청년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사진이 있었다. 태국의 어느 난민수용소에서 밥을 훔쳐먹은「캄보디아」청년. 열대의 뙤약볕 아래서 이 10세남짓한 아이는 하루종일 그런 벌을 받고 있었다.
이것은 오늘의 세계를 비춰주던 조명을 잠시 그 무대뒤로 돌려 놓은 것 같아 더 한층「아이러니」를 느낀다. 평화를 외치는 세계의 그 무수한 정치인들의 웅변속에서 이 십자가는 보아란 듯 이 우리시대의 고통과 절망을 연출하고 있다.
이미「말레이지아」는「베트남」난민을 수천명이나 공해로 추방했다. 험란한 파도속을 헤치며 망망대해로 쫓겨난 조각배는 지금쯤 어디에서 표류하고 있을지….
「말레이지아」는 기어이 난민선에 발포까지 했다. 엄포를 넘어 이젠 행동으로 난민을 적대친한 것이다.
인지해에 연한 타국들도 역시 「말레이지아」의 뒤를 따르고 있다. 「필리핀」도, 「홍콩」도 강경한 태도엔 변함이 없다.
장차 그 수십만의 난민들은 어디로 가야할지 암담하기만 하다. 미국은 난민을 받아들일뜻을 밝혔지만 무한정의 개방은 아닐 것이다. 「유엔」의「발트하임」총장은 긴급국제회의를 제안했다. 그러나 당사국인「베트남」은 이 제의를 어느새 거부하고 있다. 이유는 분면치않다. 고의로 난민을 추방하고 있는 그들로는 회의에 참가할 명분이 없을 것이다.
「로마」교황도 몇차례나 국제회의를 제의한바 있었다.이제 난민의 문제는 세계의 관심사가 되었다. 「덴마크」와 같은 나라도 인도주의를 발휘해「베트남」난민의 수용한도를 배로 늘렸다. 5백명에서 1천명으로. 그러나 이것은 성의일 뿐이지 문제해결의 전부는 아니다.
이웃 일본마저 난민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회의를 태국에서 열자고 제의했다. 「발트하임」이 제안한 「제네바」회의보다는 현지의 긴박감이 살아 있는 태국이 더 적합하다는 것이 일본의 주장이다.
그러나「베트남」이 참가하지않는 회의는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중공이나 소련의 태도도 궁금하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난민들이「베트남」의 학정에못이겨 탈출한 것이라면자유세계는 응당 그 도덕적인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그것은 인도주의의 본원이기도 하다.
자유세계는 이들 난민에게마저 절망을 안겨줄 수는 없다. 자유와 평화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적어도 발붙일 자리마저 허락지 않는다면 이 지구는 지옥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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