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스페인人 삶의 일부가 된 축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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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8강전이 열린 지난 8일 오후(현지시간), 기자는 레알 마드리드 박물관 내 매장에서 산 라울의 유니폼과 레알 마드리드 머플러를 걸치고 마드리드 시내로 나섰다.

시민들의 시선이 일제히 기자에게 쏠렸다. "마드리드- 챔피언"을 외치며 하이파이브를 들이대는 사람,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서 경적을 울리는 사람…. 지난해 월드컵 당시 서울시내를 보는 듯했다.

식당에 들어서니 예순이 넘어보이는 종업원이 반가워하며 시키지도 않은 음료수를 서비스로 내놨다. 그는 "오늘 레알 마드리드가 이기면 내일 커피를 공짜로 대접할테니 꼭 오라"고 했다.

베르나베우 경기장 앞에는 암표상과 흥정을 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이들은 대부분 35유로(약 5만원)짜리 티켓을 2백유로를 주고라도 사려는 열성 팬들이었다.

관중은 전문가였다. 경기 흐름을 보는 눈이 정확했다. 이날 유난히 실수가 많고 잘 뛰지 않는 호나우두가 후반 중반까지 교체되지 않자 많은 사람이 일어서서 벤치 쪽을 기웃거렸다.

무언의 압력이다. 그래도 벤치의 반응이 없자 관중은 "구티!" "모리엔테스!" 등 후보 선수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결국 호나우두는 후반 37분 구티와 교체됐다.

다음 날 그 식당을 다시 찾았다. 노(老)종업원은 "라울이 왔다!"며 큰소리를 질렀고, 손님들도 "라울, 라울"하며 생면부지의 동양인을 반갑게 맞았다.

스페인에서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그들의 삶에 뿌리박은 문화고, 생활이며, 소통수단이다. 프리메라리가가 세계 최고 리그로 자리잡고, 스페인이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위까지 올라선 뒷심인 것이다.

마드리드=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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