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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원폭피해자 보상문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한국인원폭피해자에대한 일본측의 보상문제가 한일양국간의 정부「레벨」에서 실무절충단계에
이르렀다는 소식은 만시지탄은 있으나 환영할만한 일로 평가된다.
이로써 한일양국민사이에는 지금까지 실질적으로는 지속되고 있는 정신적인 가해자대 피해자관
계가 청산되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우호관계가 싹틀수 있는 하나의 좋은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해
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64년의「한일협정」으로 한국에 대한 이른바「전후처리」는 일단 매듭지어
진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협약된바에 따라 한국에 제공키로한 얼마간의
이른바 청구권자금이 과거 36년간의 가혹한 한국통치기간중 한국과 한국민에 입힌 모든 손해를
보상할만한 것이었느냐는 차치하더라도 그때 전혀 거론조차 되지않았던 한국인 원폭피폭자및「사
할린」잔류 한국교포들에대한 도덕적 책임을 면제해주는 것이 될 수 없었음은 당연한 이치였다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제 한일양국정부가 이같은 원칙 타결에따라 피폭자를위한 통합병원 건
설, 원폭병전문의의 해외연수, 중환자 도일치료 등을 골자로 한 보상안을 놓고 협상을 하게 된 것
은 오욕된 양국민 사이의 역사를 선의와 인도의 빛으로 다시 쓸 수 있게해준 획기적 사건이라 아
니할 수 없다.
일제의 무조건 항복을 강요한「히로시마」「나가사끼」의 원폭은 애매한 우리동포 2만여명의
목숨을 단번에 앗아갔고 국내에만 2만여명이나 되는 피폭자들이 그로부터 34년이 지난 지금껏 무
서운 후유증으로 신음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정작 전쟁당사국인 일본의 피폭자들은
일본정부의 노력과 참전연합국들의「속죄의 보상」으로 그 상처가 거의 아물어가고 있는데도 한
국인 피해자들은 아무런 국가적 보살핌도 받지 못하고 병고와 빈곤속에서 그늘진 삶을 이어왔던
것이다.
종전3년만인 48년에 이미「원폭피해자의 의료법」을 만들어 피해자들의 실태조사와 건강진단에
나선 일본정부는 68년 특별법까지 만들어「원폭수첩」을 가진 사람은 누구든 어느병원에서나 치
료를 받을 수 있게 했고 그 후유증 때문에 취노를 할 수 없는 사람에게 대해서도 비노동수당까지
지급하는 특별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그뿐아니라 미국의 ABCC(미국원폭상해조사위)가 46년부터 벌인 모금운동을 통해 10년동안 1
백억「엔」규모의 우너조를 제공했으며 이밖에 영국·「스웨덴」등에서도 많은 구호품을 모아 보
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다.
그 반면 해방과 더불어 죽더라도 고국땅에서 죽겠다고 상처투성이의 몸을 이끌고 귀국했던 한
국인 피폭자들은 우리정부자체의 무관심과 그들자신의 무지로 당연히 나눠받아야할 「속죄의 보
상」도 받지 못한채 실의와 저주의 날만 보냈던 것이다.
정부가 원폭피해자단체의 성화에 못이겨 피폭자의 실태조사에 착수나마 한 것이 67년이었으니
그동안 사회의 냉대속에서 그들이 겪은 병고의 아픔은 상상을 절한것이라 하겠다.
뒤늦게나마 정부가 이들의「절규」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일본정부도 보상을 해주겠다는데 원
칙적동의를 했다고 하니 양국간의 우호증진이라는 면에서도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더우기 피해자의 대부분이 일제의 쇠사슬에 묶여 징용당했다가 변을 당한 침략전쟁의 희생자들
이므로 일인피해자들과 똑같은 보상과 처우를 받을 권리가 있음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는 일이다.
물론, 정부「레벨」의 원칙적 합의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 구체적 절차에 있어서는 아직도 해
결해야 할 몇가지 난관이 가로놓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에게 보상을 해줄 법적근거를 놓고
일본 정부안에도 이견이 있는 것으로 들리는데 정부간의 외교「채널」은 물론 한일의원연맹이나
협력위 등을 통해서도 이 계획이 반드시 성취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오오히라」수상은 얼마전「사할린」에 억류중인 한국인의 송환을 위해 소련과의 협상
을 계속하겠다면서『도덕적·인도주의적견지에서 이들에 대해 책임을 느낀다』고 했거니와 우리
는 이같은 발언을 일본측의 진실한 성의표시로서 함께 환영한다.
「사할린」교포문제와 함께 원폭피해자 보상문제가 완전히 매듭지어질 때 비로소 양국간의 전
후시대는 종료될 것이며, 나아가 진정한 우호의 바탕이 마련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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