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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숲에서 나와야 숲이 보인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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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축구경기를 처음 본 선비는 혹시 이런 의문을 품지 않았을까. “왜 저렇게 우왕좌왕하지?” 축구는 그야말로 ‘이쪽저쪽 왔다갔다’ 하는 경기다. 하지만 이유가 있다. 지켜야 할 목표물(골대)이 서로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목표는 선명했다. “원 팀, 원 스피릿, 원 골.” 원 팀, 원 스피릿은 분명했지만 원 골은 여의치 않았다. 기회는 있었지만 기적은 없었다. 골은 인색했고 결과 앞에서 의도는 무색했다. 선악은 의도로 가르지만 상벌은 결과로 나누기 마련이다. 고개 숙인 감독과 선수들 앞에는 훈육의 말들만 무성했다.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다.” 이영표 해설위원이 마지막 조별 경기 직후 내뱉은 고언이다. 이번 경기 내내 승부만큼 해설도 흥미로웠다. 채널 셋을 돌려가며 본 시청자도 꽤 됐다. 그림은 동일하지만 소리는 제각각이다. 홍 감독은 탈락이 확정된 후 ‘그래도 소중한 경험을 했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기사로만 보면 공교롭게도 이 위원이 홍 감독을 훈계하는(?) 형국이 됐다. 그 둘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원 팀, 원 스피릿’이었다. 물론 프로끼리 말 한마디로 소원해질 리는 만무하다. 문제는 시차였다. 홍 감독의 인터뷰가 나중이고 이 위원의 코멘트가 먼저였다. 그건 영상이 ‘증명’한다.

 이번 월드컵경기 시청률은 예상(?)을 깨고 ‘이영표 해설’이 1위를 기록했다. 노련한 부자유친(차범근·차두리), 옥신각신 장유유서(안정환·송종국)를 ‘표’나게 제쳤다. 해설은 분석보다 해석이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공감하게도 하고 반감을 품게도 만든다. 이영표는 알제리전이 끝난 후 이렇게 말했다. “전반전은 3 대 0으로 졌지만 후반전은 2대 1로 이겼다.” 축구가 아니라 인생을 해석하는 말로 들린다.

 노래 하나가 다가온다. 시인과 촌장이 부른 ‘숲’은 잠언으로 시작한다. “저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 푸르고 푸르던 숲 음 내 어린 날의 눈물 고인 저 숲.” 그들은 왜 선수일 때 못 보던 걸 지금은 볼 수 있을까. 그라운드에선 적과 동지밖에 안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중계석에선 하늘도 보이고 구름도 보인다. 사람들의 표정도 보인다. 가까이서 보면 조금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많이 보인다.

 다시 경기장에서 달릴 일이 없을 것 같은 이영표의 표정이 편안해 보인다. 깨달은 자의 여유가 느껴진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

주철환 아주대 교수 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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