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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 터뜨린 고객 한 명 뒤엔 같은 심정 고객 1585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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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호 22면

2010년 국제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가 동영상 하나를 유튜브에 올렸다. 세계 최대 식품기업 스위스 네슬레의 초콜릿 제품 ‘킷캣’에 관한 내용이었다. 영상에는 킷캣에 원료로 들어가는 팜오일을 생산하느라 인도네시아 산림이 얼마나 파괴되는지, 그 숲에 사는 주민과 오랑우탄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졌는지가 담겼다. 영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져나가자 네슬레는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 그런데 그 대응이 연신 헛발질이었다. 네슬레는 ‘해당 영상물이 저작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아 법원에 가처분 신청한 뒤 강제 삭제에 나섰다.

기업·브랜드의 소리 없는 파괴자 ‘반감(反感) 고객’

이어 ‘kitkat’의 로고를 ‘killer’로 패러디한 문양을 프로필 사진으로 쓴 유저의 글을 무단 삭제했는가 하면 이들에게 훈계하는 듯한 어조의 댓글까지 남겼다. 그러자 사태는 더 험악해졌다. 대기업의 위압적 태도에 반감을 가져왔던 고객들이 네슬레 비난에 가세하기 시작했다. 네슬레는 네티즌이 네슬레 팬 페이지에 해당 영상물을 퍼나르자 이를 아예 폐쇄해 버리기도 했다. 그 바람에 우호 고객들마저 소통 창구를 잃어버리고는 부정적 여론 확산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148년 전통기업 네슬레의 매출액 추락 위기로 이어진 이 사건은 기업들 사이에 제품이나 브랜드에 나쁜 감정을 가진 고객, 이른바 ‘반감 고객’ 관리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SNS, 반감 고객 확산 기폭제
국내에서도 반감고객 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때맞춰 반감고객의 행동 패턴을 분석한 경제학 저서가 출간됐다. 마케팅 전문가인 동덕여대 최순화 교수가 쓴 『반감고객들』(삼성경제연구소)은 반감고객 관리의 중요성, 이들을 우군화하기 위한 대응 요령 등을 다양한 사례와 함께 소개한다. 반감고객 관리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하다. 부정적 감정이 긍정적 감정보다 확산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부정은 긍정보다 강하다(Bad is stronger than good)’는 것이다. 실증 연구도 있다. 한 연구기관이 미국·유럽·아프리카·호주 등의 소비자 7만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분 좋은 경험을 한 소비자는 그중 25%만이 자기 경험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했다. 반면 불쾌한 경험을 한 소비자는 65%가 부정적 이야기를 전달했다. 또 주변 사람 10명 이상에게 자기 경험을 전달한 비중은 긍정적 경험을 지닌 소비자의 경우 23%에 그친 반면 부정적 경험을 한 소비자는 48%에 달했다. 미담보다 ‘목에 핏대 세웠던 일’의 파급 효과가 크다는 얘기다.

반감고객의 숫자는 기업의 기술 수준이 높아지고 마케팅 비용을 늘린다고 해서 줄지 않는다. 저자는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기업이나 브랜드에 대한 반감은 경제·사회·문화적 여건과 맞물려 커지기 때문이다. 먼저 국민소득이 2만 달러대를 넘어설 즈음 반감고객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최 교수는 이를 “풍요로워질수록 소비자들은 새로운 마케팅 자극에 쉽게 만족감·행복감을 느끼지 않는 데다 윤리적 소비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기업과 제품에 대한 반감의 폭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기업활동을 감시하는 NGO가 늘어나는 것도 반감고객 확산의 토대가 된다. 최 교수는 “NGO의 활동이 활발할수록 착한 제품, 착한 소비에 대한 인식이 퍼지고 기업이나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치도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사회의 윤리 수준이 낮았을 땐 문제되지 않던 기업 활동이 윤리수준이 높아지면서 문제가 된다는 얘기다.

유튜브·트위터·페이스북 같은 뉴미디어 확산도 반소비 운동의 기폭제가 된다. SNS가 반감고객을 모으고 나쁜 경험을 알리는 데 필요한 조직화 비용을 경감시켜 주기 때문이다. 실제 2004년 패스트푸드의 해악을 알린 영화 ‘수퍼 사이즈 미(Super size me)’의 경우 유튜브를 통해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소비자들 사이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SNS 전문가 박용후 피와이에이치 대표는 “뉴미디어의 주사용자인 젊은 층 가운데 윤리적 소비, 착한 소비 캠페인에 동참하는 발길이 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며 “SNS상 평판관리가 기업 이미지 관리의 중요한 숙제가 됐다”고 말했다.

기업의 규모가 크고 브랜드 명성이 높을수록 반감고객이 쉽게 생겨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실험으로도 입증됐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 두 개의 실험집단을 놓고 점심시간에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한 집단은 인지도가 높고 평판이 좋은 브랜드에서, 다른 집단은 반대로 평판이 낮은 브랜드에서 주문했다. 양쪽 집단 모두 예정 시간보다 30분 늦게 샌드위치를 배달한 뒤 반응을 실험했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평판이 낮은 쪽 제품의 경우 실험 전과 후의 브랜드 만족도가 2.75에서 2.73으로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평판이 좋은 브랜드의 만족도는 3.64에서 2.38로 35%나 하락했다. 배달을 90분 지연시킨 실험에서는 유명 브랜드의 만족도가 55%나 하락해 1.62를 기록했다. 우수한 브랜드일수록 소비자의 분노와 이탈이 컸던 셈이다.

반감고객이라고 다 같지는 않다. 누구를 대상으로 부정적 감정을 품는지, 그 감정을 어떤 식으로 표출하는지에 따라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먼저 ‘보복형(Revenger)’. 이들은 기분 나쁜 일을 당하면 가만있지 않고 보복에 나선다. 정신적·물질적 피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거나 기업이 처벌을 받을 때까지 온·오프라인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유기형(Abandoner)’은 나서지 않는 대신 상품과의 ‘조용한 이별’을 택한다. 이런 소비자가 많아지면 기업은 자신의 문제점을 인지하지 못한 채 고객 감소에 시달리게 된다. ‘유격형(Guerilla)’은 소비자운동을 적극 펼치거나 이에 동조하는 이들이다. 대량생산과 과소비로 인한 자원 낭비·환경 오염 등 기업의 부정적 측면을 비판하는 반소비 운동의 활동가들이 해당된다. 유격형의 ‘안티 마케팅’에는 최근 유명 스타들이 동참하면서 기업들의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공격 대신 회피를 택하는 소비자들은 ‘탈출형(Escaper)’이다. 이들은 범람하는 상품과 마케팅 정보를 스트레스로 받아들여 아예 회피하고 자신만의 소비방식을 추구하는 아웃사이더이다.

평판 높은 브랜드일수록 반감 더 커져
어떤 유형이 됐든 기업이 대응책 마련에 나서지 않으면 나쁜 소문의 확산과 고객 감소를 막기 어려워진다. 다시 네슬레로 돌아가 보자. 킷캣 사건으로 교훈을 얻은 네슬레는 마케팅 전략의 최우선 목표를 ‘고객 팬’ 관리가 아닌 ‘브랜드 위기 관리’로 전환했다. 전문가 15명으로 구성된 ‘디지털촉진팀(DAT)’을 만들어 부정적 여론 집중 감시에 나섰다. 이들은 전 세계 650여 개 브랜드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콘텐트를 실시간 모니터링한다. 고객 메시지에서 부정적 단어가 여러 차례 발견되면 회사 차원의 조치에 나선다. 최근 한 파키스탄 소비자가 “네슬레가 파키스탄에서 생산하는 생수는 (그들 자신을 배불리기 위해서지) 가난한 지역 주민을 위한 것이 아니다”는 글을 올렸다. 글이 올라온 지 채 두 시간도 안 돼 네슬레 최고경영자(CEO) 페터 브라베크는 “우리는 파키스탄 공장의 지역주민 1만 명 이상이 마실 수 있는 생수 공급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응답했다. CEO가 직접 나섬으로써 답변의 신뢰도를 높이고 부정적인 여론 확산을 조기 차단한 것이다. 최 교수는 “네슬레에서 마케팅 관리자가 되려면 DAT에서 8개월간 빅데이터 도구를 활용한 소셜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해야 한다”며 “국내 기업들도 충성도 높은 일부 고객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일 게 아니라 부정적인 평판의 확산을 막는 새로운 마케팅 기법에 공을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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