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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蹴鞠<축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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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호 31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세계인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스포츠는 축구(蹴球)가 아닐까 싶다. 4년마다 개최되는 월드컵 축구대회의 광적(狂的)인 열기를 감안하면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의 현대 축구는 영국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세상 만사에서 중국을 빼놓고 말하기는 어렵다. 특히 어떤 일의 기원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은 2004년 7월 베이징에서 열린 제3회 중국 국제축구박람회 개막식 석상에서 축구의 기원이 중국이라고 공식 선포했다. 중국 산둥(山東)성 쯔보(淄博)를 도읍으로 했던 춘추전국시대의 제(齊)나라에서 처음 축국(蹴鞠)이라는 이름으로 축구가 등장한 뒤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 프랑스를 거쳐 영국으로 전해지게 됐다는 것이다. 중국은 2005년 9월 쯔보축구박물관을 열었다.

축(蹴)은 발로 찬다는 뜻이며 국(鞠)은 가죽 공을 의미한다. 병정을 훈련시키는 놀이로 시작됐다. 축국은 구장(球場)이 없는 것과 있는 것, 또 양쪽에 골문을 설치한 경기 등이 있었다. 구장이 없이 아무데서 하는 축국은 오늘날 제기차기와 비슷하다. 구장 양쪽에 구멍을 판 축국은 한(漢)나라 때 성행했다. 한 고조 유방(劉邦)이 아버지를 위해 따로 경기장을 만들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당(唐)나라 때엔 2개의 골문을 설치한 구장에서 축국을 했는데 오늘날의 축구와 비슷했다. 당대의 시인 왕유(王維)가 쓴 시 ‘한식 날 성 동쪽의 풍경(寒食城東卽事)’엔 축구하는 모습이 생동감 있게 묘사돼 있다. “가죽 공을 차서 번번이 나는 새 위로 지나가고(蹴鞠屢過飛鳥上) 그네를 뛰며 앞다퉈 수양버들 속에서 나온다(鞦韆競出垂楊裏).”

당 시기에 축국이 발전한 까닭은 보병의 경우 군사훈련의 핵심이 진법(陣法) 훈련인데 축국은 공수(攻守)의 일정한 진법을 유지하는 놀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명(元明) 때는 기병의 역할이 강조되며 축국은 점차 쇠퇴했고 청(淸)대 들어서는 민간에서 유행했다.

재미있는 건 축구의 고대 기원국인 중국은 이번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 나가지도 못했고, 현대 축구의 기원국인 영국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해 16강에도 오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전통의 계승과 발전은 후손의 몫임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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