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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비선 라인이란 유령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81호 35면

몰래 어떤 인물이나 단체와 관계를 맺고 있음. 또는 그런 관계.

‘비선(秘線)’에 대한 사전적 정의다. 이런 묘한 단어가 정치권에 돌아다닌 지는 오래됐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인사 난맥이 최고조에 이르면서 그 원인의 배후로 공론화되는 양상이다.

“박 대통령이 공식 채널이 아닌 소규모 비선 라인을 통해 상당히 얘기를 많이 듣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박관용 전 국회의장, 25일자 인터뷰) “비선 라인에서 문창극 총리 후보자를 추천했다는 의혹이 있지 않나. 만만회(청와대 총무비서관 이재만, 박 대통령의 남동생 박지만, 박 대통령의 옛 보좌관 정윤회)라는 것이 움직이고 있다는 거다.”(25일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사실 ‘만만회’란 신조어가 등장하기 전만 해도 언론은 인사에 관여하는 비공식 자문그룹으로 ‘7인회’를 지목해 왔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현경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외에 김용환 새누리당 상임고문, 안병훈 기파랑 대표,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김용갑 전 의원, 강창희 전 국회의장이다.

‘문고리 권력 3인방’도 심심찮게 거론됐다. 이재만 비서관 외에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다. 이들은 청와대 공식 직함이 있는데도 직급을 뛰어넘어 인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풍문 때문에 ‘그림자 권력’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정작 뭔가 제대로 확인된 적은 한 번도 없다. 박 대통령의 인사 과정을 취재할 때마다 유령을 잡으러 다니는 듯한 기분이었다. 7인회는 생각보다 접촉하긴 쉽다. 하지만 “내가 추천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만 답한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청와대에 입성하기 전인 지난해 2월 전화통화에서 그랬다. 3명의 총리·장관 후보자 추천설이 돌았던 안병훈 대표도 “전혀 사실무근”이라고만 한다.

만만회, 문고리 권력 3인방은 어떨까. 이들은 모두 언론과의 접촉을 꺼리니 확인이 안 된다. 이재만 비서관은 박 대통령이 의원이던 시절만 해도 ‘생애주기형 맞춤형 복지’ 등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질문을 던지면 열정적으로 정책 내용을 설명할 만큼 ‘학자형 보좌관’이었다. 하지만 그가 청와대에 들어간 뒤엔 아무리 통화를 시도해도 받는 법이 없다. 박지만씨의 지인들은 “지만씨는 인사엔 전혀 관여하지 못하는 것으로 안다”며 고개를 젓는다. 박 대통령이 과거 살았던 삼성동과 가까운 곳에서 활동해 왔다는 삼성동팀의 ‘정 실장’ 정윤회씨도 연락이 안 닿는다.

연락이 닿는 사람들은 안 했다고 하고, 연락이 안 닿는 사람은 확인이 안 되는 판이니, 인사 지명 과정에 대해 기사를 써야 하는 기자들은 참 고역이다.

박 대통령은 이젠 공적인 루트인 인사수석실을 만들어 인사를 하겠다고 했다. 그럼 앞으론 문제가 없을까. 왠지 안심이 안 된다. 대통령이 먼저 여야에 의견을 구하고, 지명 과정을 국민 앞에서 설명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한 앞으로도 ‘유령 잡기’식 취재는 계속하게 될 것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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