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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한국의 도로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사는 안전이다. 가슴 아픈 세월호 참사에 이어 터진 서울 지하철 사고에 전남 장성 요양병원 방화 사건 등 안타까운 일들이 이어지면서 안전이 정치적 의제로 떠올랐다. 세월호 참사 후 약 두 달이 넘게 흘렀지만 시민들은 아직도 괴롭다. 참담한 사고로 인해 수많은 생명이 사라졌지만, 피해 방지는 물론 사후 대응도 제대로 하지 못한 이들에 대한 원망은 여전히 남아 있다. 시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재발 방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깊은 애도를 보내며 더욱 안전한 사회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한국을 응원한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하나 있다. 왜 이 시점에서도 도로 안전은 여전히 뒷전인가 하는 점이다.

지난주 서울 도심 도로 한복판에서 적잖이 당황한 경험을 했다. 신호등은 분명히 초록색이었는데 차량들은 보행자를 무시하고 앞다투어 전진하고 있었다. 그다지 드문 일은 아니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변화가 없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웠다.

한국의 교통사고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최근 열린 국제교통포럼은 한국의 교통사고 사망률이 인구 10만 명당 매년 10.8명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발표한 통계에 비해 3.1% 높아진 것이다. 영국에 비하면 3배에 달한다. 이 중에서도 보행자 사망률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고 한다.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이럴까. 나는 2011년 서울 근무를 시작했고, 한국엔 강력한 교통안전법이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사는 서울 남산 인근에선 엄중한 단속이 이뤄지는 장면을 종종 목격한다. 음주운전 단속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음주 측정이 끝난 심야다. 폭주하는 자동차며 오토바이 소리에 잠을 못 이룰 때가 자주 있다.

택시는 어떤가. 빛의 속도에 가깝게 질주하는 택시 안에서 겁에 질린 경험도 많다. 한국어로 “조금 천천히 운전해 주세요”라고 하면 기사들은 대부분 불평을 하거나 심지어 비웃기도 한다. 어떤 기사는 “빠를수록 좋다”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안전벨트를 매려고 찾아보면 의자 깊숙한 곳에 박혀 있어서 착용 자체가 불편한 경우가 많다. 이런 일들을 ‘빨리빨리’ 문화의 한 단면 정도로 넘겨도 될까.

교통신호 불감증 역시 심각하다. 물론 교차로 횡단보도에 사람이 없을 경우 빨간불이 켜졌어도 운전자는 보행자가 없다는 걸 확인한 뒤 우회전을 할 수 있다. 그런 경우라 해도 빨간불 앞에선 일단 정지해야 한다. 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한국에선 왜 보행신호가 버젓이 켜져 있는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슬금슬금 전진하는 차량을 피해 보행자가 뛰어야 하는가.

한국의 일부 무책임한 운전자들은 앰뷸런스마저 가로막는다. 만약 저 앰뷸런스에 타고 있는 환자가 내 가족이라면 그렇게 할까. 우리 모두 가야 할 목적지가 있고,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바쁜 건 매한가지다. 하지만 그게 앰뷸런스의 긴박함보다 더 중요한 것일까.

마지막으로 꼭 짚고 싶은 문제는 인도 위의 오토바이 주행이다. 한국 생활의 즐거움 중 하나가 훌륭한 배달 서비스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나 역시 그 수혜자다. 하지만 왜 그 배달 오토바이나 퀵서비스 오토바이는 차도가 아닌 인도에서 레이스를 즐기는 걸까. 왜 보행자들은 인도 위에서도 자유를 만끽할 수 없는 걸까.

안전은 어느 한 기관의 책임만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의무다.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길을 걷는 건 개개인이 스스로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이다. 지금이야말로 보행자와 운전자 모두가 스스로 안전의식을 갖고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콜린 그레이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법학을 전공한 후 기자로 일하다 외교관으로 변신했다. 스페인 등에서 근무하다 2011년 한국에 부임했다.

콜린 그레이 주한 영국대사관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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