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5)실내장식업|〃젊은층이 주도〃…4∼5년전부터 「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70년대에 들어와 경제발전에 의한 전반적인 생활수준의 향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좀더 쾌적한 주거환경을 만들기 위해 실내를 꾸미자는 생각을 하게됐다.
그전까지만 해도 실내장식은 잘해야 1년에 1, 2번씩 도배나 하고 창호지나 갈아바르면 족했고 가구라야 「호마이카」에서 철제 「티크」무광택 나무등으로 재료가 바뀌는 정도였다.
그러나 60년대말께부터 서서히 시작된 「아파트」의 보급은 근본적으로 생활에 필요한 가구 및 실내장식용품의 종류부터 바꿔놓았다. 「아파트」에 붙어있게 마련인 붙박이장으로 재래식 주택에서 쓰이던 이불장 양복장같은 덩치 큰 가구가 필요없게된 반면 침대와 응접「세트」, 식탁과 의자들이 필요불가결한 생활용품이 되었다.
거실의 한쪽면을 차지한 넓은 유리를 가릴 「커튼」이 없으면 거리에 나앉은것 같은 느낌을 갖게했고, 거실바닥을 덮을 「카페트」도 필요해졌다. 삭막한 현대공간에 어울리는 중후한 빚깔, 「심플」한 장식의 문갑 반닫이 약장등의 소형 전통목가구의 수요가 급증한것도 이즈음부터였다.

<반닫이·약장등 목가구나타나>
이러한 새로운 수요에 따라 「커튼」 「카페트」 응접「세트」 도배지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가게들이 생겨났고, 이를 종합적으로 맡아 처리하는 실내장식 연구실도 하나 둘씩 문을 열었다. 74년 가을, 민간 「아파트」건설업체인 삼익주택과 한양주택이 여의도 「아파트」건립부지 한 옆에 처음으로 「모델·하우스」를 꾸몄던 것은 일반에게 「인테리어·디자인」의 효과를 심는 계기가 되었다. 「아파트」신축 「붐」을 탄 「아파트」 투기열은 또한 상습투기꾼들로 하여금 천편일률적으로 개성없는 주거공간을 조금이라도 돋보여 더 많은 돈을 받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아파트」를 꾸미게 했고 이는 「인테리어·디자인」「붐」을 불렀다.
서울의 을지로를 중심으로 효자동 이태원 한남동등 주택가에 몰려있던 실내장식용품 상점들이 대거 강남의 반포 여의도, 영동 잠실의 「아파트」단지쪽으로 퍼져나갔다. 대학의 건축공학과등에서 전문적인 주택공부를 한 주로 홍익대출신의 젊은이들이 실내 장식연구실을 연것도 74, 75년께라고 문신규(「토탈·디자인」대표이사)는 얘기한다.
「아파트」와 서양식 주택의 건축「붐」 이외에도 최근의「인테리어·디자인」계에 크게 활기를 불어넣은 것이 실내장식의 효과를 크게 필요로 하는 「호텔」등의 대형건물신축과 양장점·식당·다방·각종상품의 「쇼·룸」등 영업장소의 확대.
76년「플라자·호텔」에 이어「하이야트」신라 「롯데」등의 「혼텔」들이 연이어 신축됨에 따라 국내 실내장식 「디자이너」들에게도 비교적 규모가 큰 공사를 담당할 수있는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다. 지난 3월초 문을 연「롯데·호텔」의 경우 6개의 국내 실내장식 연구실이 내부장식에 참여하여 평균 2억원씩의 공사를 했던 것은 크게 「인테리어·디자인」계를 고무했다.
그밖에도 식당이나 다방등의 요식 및 접객업소등에서도 실내장식에 크게 신경을 쓰게 된 것이 최근 2, 3년전부터의 두드러진 경향이다. 식당엘 간다하더라도 단지 음식을 먹으러간다는 의미뿐 아니라 되도록이면 분위기 좋은 곳을 찾는 일반의 취향에 따라 실내장식이 업체의 매상고에 크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인테리어·디자인」이라고는 하지만 그 취급범위는 무척 넓다. 건물내부의 바닥·벽·「커튼」·천장·조명등은 물론 그 안에 들여놓는 각종 가구들 「쿠션」등 실내장식용 「액세서리」, 나아가서는 벽에 붙이는 그림과 식기들, 그 실내에 살고있는 사람의 의상까지를 포함하는 것이 최근 가미의 경향이다.
현재 서울을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는 실내장식 연구실은 줄잡아 1백여군데다.
이렇다할 전문적인 지식없이 간판을 내건 경우까지 합하면 그 숫자는 훨씬 늘어난다. 그중 대학에서 건축학 또는 장식미술등 전문적인 공부를 한 「디자이너」를 10∼20명 정도 확보하고 있는 비교적 규모가 큰 곳은 10여곳에 이른다.

<우후죽순처럼 서울에 백여 곳>
이는 74, 75년께부터 우후죽순격으로 크게 늘어난것으로 일련의 건축「붐」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70년 초만해도 종합 실내장식 연구실이 4, 5군데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증가다.
최근 실내장식의 공사비는 대체로 바닥·벽·천장·「커튼」·조명등을 포함하여 일반주택이 편당 40만원선. 식당 「쇼·룸」등의 영업장소는 편당 60만원내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테리어·디자이너」의 보수기준은 대체로 공사비가 1천만원 미만인 경우가 공사비의 10∼15%선. 1천만원 이상일 경우는 8∼10%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일부 특수층을 상대로 값비싼 중동제등 외국산 「카피트」와 수입벽지, 「스웨덴」제 「크리스털·샹들리에」등을 그 나름의 「루트」를 통해 구입하여 실내장식을 하는 몇몇 실내장식 연구실의 경우는 값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을 상대로 한 중고품중심의 외가구 전문집이 명동에만도 3, 4군데 있다. 보통「이탈리아」산 놋쇠장식 조명등이 10만∼40만원, 중동산 3∼4평크기 「카피트」1장이 80만∼1백만원을 홋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일부층의 사치벽을 말해주고 있다.
「인테리어·디자인」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크게 높아지자 그에 따르는 실내장식용품의 생산과 개발이 크게 촉진되어 발전해 온 것이 최근 4, 5년의 경향이다.
우선 「커튼」의 경우만 해도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일부 군소업자들의 주문생산에만 응했던 대기업들이 75년께부터 직접생산, 선경·원진「레이온」·「코오롱」·삼도직물·한일합섬등이 뛰어들어 「패턴」과 「디자인」이 무척 다양한 「커튼」지를 생산하고 있다.
또한 최근 2, 3년께부터는 선경·원진·「코오롱」·「트프론」등이 종합「인테리어」생산부룰 설치, 벽지 「시트」지 「카피트」등을 종합적으로 취급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수출품 40%가 전통 살린 가구>
가구의 경우도 같아 선창·「브르네오」등 대규모 「메이커」 외에 77년께부터 삼익주택·한양주택의 건축회사가 「아파트」에 필요한 가구의 자체생산에 들어갔고 신흥목재도 가구생산에 참여하고 있다.
가구의 국내수요가 최근 4, 5년 사이에 크게 늘고 질도 좋아졌다는 사실은 가구의 해외수출이 크게 늘었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가구수출액의 최근 4년간 추이를 보면 75년이 7백36만6천「달러」. 76년은 1천4백65만4천「달러」, 77년에는 2천8백8만1천「달러」, 78년은 3천5백75만「달러」를 「마크」했다.
79년 수출목표액은 5천만「달러」로 75년부터 77년까지는 거의 1백%, 그후로는 40%의 신장율을 기록하고 있다. 수출상품중 40%정드는 한국 전통가구의 재현품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테리어·디자인」「붐」은 78년 후반기부터 계속되는 건축「붐」의 침체로 최근에는 답보상태라는 것이 실내장식 「디자인」계의 공통된 이야기다.
따라서 경기가 침체할수록 더욱 필요성이 강조되는 「쇼·룸」등의 영업장소 실내장식에서 활로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디자이너」들은 말한다. <박금옥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