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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만의 "여보세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우리 나라와 소련간의 국제전화 개설직후 서울 종로구 돈의동17의2 유미자씨(51)가 모스크바에 사는 여동생 유금자씨(38)와 감격의 첫 통화를 나누었다. 유씨 자매는 일본 규우슈에 살다 1943년 아버지 유학인씨가 사할린에 있는 금광에 일하러가면서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갔으나 미자씨만 해방과 함께 귀국하여 가족들과 헤어져 36년만에 혈육과의 극적인 통화를 하게된 것이다. 미자씨는 일본에 있는 친지를 통해 금자씨가 모스크바의 돈·스카야 아파트 25동33호에 살고있다는 것과 전화번호까지 확인, 24일 우리 나라와 소련간의 국제전화가 개설됐다는 체신부 발표가 있자 서울국제전신전화국에 처음으로 통화신청을 했다. 25일 상오2시12분(모스크바 시간 24일 하오8시40분) 본사 방송스튜디오에서 이루어진 이 통화에는 미자씨와 미자씨의 장녀 박혜숙(25)·2녀 정숙(21)양 등 가족 3명이 나와 금자씨와 16분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편 중앙일보도 이날 상오 9시30분부터 22분 동안 모스크바의 유금자씨와 통화했다.

<유씨 자매의 통화>"서울 언니다 엄마 잘 계시냐" "울지 마세요 언니, 잘 있어요"
▲미자씨=금자야, 나 언니다. 미자 언니야, 엄마(장을진·75) 잘 계시냐.
▲금자씨=예, 반가워요. 언니, 엄마도 건강하시고 오빠도 잘 있어요.
▲미자씨=모두 다 편안하시구나. 박샤샤(금자씨 남편·한국인2세)·조카 세르샤(12·금자씨의 장남)도 잘 있니.
▲금자씨=네, 모두모두 잘 있어요. 지난번 보내주신 편지도 잘 받았구요.
▲미자씨=나도 네가 보낸 편지 잘 보았다. 아버지(유학인·78)가 지난해 돌아가셨다는데 장례 치르느라고 고생했겠구나(미자씨는 이 말을 하면서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금자씨=울지 마세요. 언니. 엄마는 잘 계셔요.
▲미자씨=(계속 울먹이며)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고국에 오고싶어하셨는데…너하고 통화라도 됐으니 울지 않겠다. 36년이나 지났는데도 만나지 못했으니 이젠 어떻게 하면 좋으니. 80년 모스크바·올림픽에 가서 만나보고 싶구나.
▲혜숙양=이모, 정말 보고싶어요. 이모, 무슨 일을 하고 계세요?
▲금자씨=(잘못 알아들은 듯)일은 모두 잘하고 있으니 근심 말아요.
▲미자씨=엄마에게도 안부 전해다오. 또 전화할게.
▲금자씨=엄마는 다음달에 하바로프스크로 이사할 거예요. 엄마 만나서 전화하시라고 말씀 드릴께요. 모두들 안녕히 계세요.
미자씨 가족들에 따르면 금자씨와 남편 박샤샤씨(41)는 모스크바종합대학 동창생으로 13년 전 결혼, 아들 1명을 두고있으며 박씨는 6개 국어에 능통한 언어학 박사다.

<본사와 유금자씨 통화>"한국선수 소 방문 알고있어요. 화장품 등은 백화점서 구해요"
본사=서울에 있는 중앙일보입니다. 통화가 돼서 기쁩니다. 새벽잠을 깨워서 미안합니다.(모스크바 시간 새벽3시30분)
유씨=전화가 잘 들리는군요. 반갑습니다.
본사=우리말을 잘 하시는데….
유씨=주변에 우리교포들이 많아 자주 만나 식사도 하면서 우리말을 하고 지냅니다.
본사=그쪽 생활형편은 어떻습니까?
유=비교적 넉넉한 생활을 하고 있읍니다.
모스크바 시내에서 방3개짜리 아파트에 살고있으며 냉장고·피아노·컬러TV등도 갖추고있지요. 자동차는 없어 버스·지하철을 이용합니다.
본사=한국 체육선수들이 모스크바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학자들도 방문했는데….
유씨=신문에 나기도 해서 알고있으며 교포들이 서로 알려주기도 합니다.
본사=내년 모스크바·올림픽대회에 한국팀이 갈 예정인데 알고 있는지요….
유씨=알고 있읍니다.
본사=화장품이나 일용품 사정은?
유씨=뽀마다(입술연지의 소련 말)등 화장품이 많고 백화점등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교환양끼리 첫 통화>"여기는 서울 영어할 줄 아느냐" "평양인 줄 알았다 정말 반갑다"
24일 하오11시30분 서울국제전신전화국의 교환양 오세현양(26)이 캐나다를 경유, 영국 런던의 교환양을 불러 『오늘부터 모스크바와 공식개통됐으니 라인협조를 부탁한다』고 말하자 곧 모스크바 교환양을 호출해줬다.
◇첫번째 통화(24일 하오11시30분 모스크바 시간 24일 하오5시30분)
▲서울=모스크바냐(영어)?
▲모스크바=불어할 줄 아느냐(불어)?
▲서울=잘 못한다. 영어할 줄 아느냐(영어).
▲모스크바=노·마담.
▲서울=영어하는 교환양을 바꿔달라(영어).
▲모스크바=노·마담. 여기는 공식적으로 불어를 사용한다(전화를 끊음).
◇두번째 통화(25일 상오0시30분)
역시 영국 교환양을 통해 모스크바 교환양이 나왔다. 이번에는 영어를 사용.
▲모스크바=여기는 모스크바다. 어디인가.
▲서울=코리아다.
▲모스크바=평양이냐.
▲서울=사우드 코리아 서울이다. 도와달라.
▲모스크바=오! (놀라는 목소리) 반갑다.(쾌히 승낙했다)
▲서울=영어를 매우 잘한다
▲모스크바=(기분이 좋은 듯) 고맙다. 당신도 영어를 매우 잘 하는데 어디서 배웠는가.
▲서울=학교와 친구에게서 배웠다.
▲모스크바=일본어를 할 줄 아는가.
▲서울-일어는 몇 마디밖에 모른다. 우리 나라 아이스·하키팀 합숙소인 내셔널·호텔에 연결해 달라. (전화번호가 확인되지 않아 통화가 안됐다)
▲모스크바=댕큐를 러시아말로는 스파시바(spasibo)라고 한다.
▲서울=친절해서 고맙다. 이름을 가르쳐 달라.
▲모스크바=(웃기만 할 뿐 대답을 안했다.
교환양들은 이름대신 고유번호만 사용하는 것이 국제관례(여기서 캐나다로 통화가 많은데 코리아에서도 도와달라. (이때 통화가 잠시 끊기더니 다른 교환양이 나와 별말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모스크바와의 첫 통화를 성공시킨 오양은 경력6년에 영어실력 A급의 베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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