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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의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이밤은 해가 다되는 그믐밤이다. 비통한 마음이 더욱 더했다…』
임신년에시작된 전난에 시달린지도 7년이 되는 1598년의 제야에충무공은 이렇게 일기에 적었다.
그런지 5일 후부터 9월14일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난중일기에는 공백이 있었다.
그것을 매워주는 『최일옹파왜보첩』이 최근에 발견되었다. 그속에는 거북선에 관한 귀중한 기록도 적혀있다고 한다.
「이충무공전서」에 나오는 통제영귀선도에 보면 노가 좌우에 10개씩 모두 20개가 그려져 있다.
그런가 하면 전라좌수영 귀선도에는 좌우에 8개씩 모두 16개의 노가 그려져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거북선의 노수는 18개씩과 20개씩의 둘이 가장 유력했다. 그러나 이번에 발견된 승전보고문속의 병기보첩에는 노가 9쌍이었다고 적혀있다.
이를 보면 귀선에는 아마 3종류가 있었던게 아닌가 짐작된다.
가장 오래된게 대종13년에 진수했다는 귀선이다. 통제영귀선은 바로 이것을 그대로 본떠서 만든 것같다.
크기는 대충 83척에서 90척사이며 폭이 28척이상이었다니까 재일 컸던 모양이다. 두번째로 컸던게 『…앞에는 용머리를 붙여 아구리로 대포를 쏘고, 등에는 쇠못을 꽂았으며…』라고 충무공이 선단에게 보고한 별제귀선이다.
이 귀선에 대해 충무공의 조카 이개는『…전선을 창작했는데 크기는 판옥선만하고…』라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판옥선은 임진란이 끝난 뒤에「전선」이라 불리던 배다. 그것은 또 대명선이라고도 했다.
이 배의 크기는 전장이 73척이고 폭이 사척이었다. 따라서 이별제귀선은 통제영귀선 보다는 좀 작았던게 틀림없다.
「최일옹파왜보첩」에 나오는 귀선도 바로 이별제귀선이었을 것 이다.
그리고 별제귀선의 노가 좌우로 9쌍씩 달려있던데 비해 이보다 전장이 긴 통제영귀선에는 10쌍씩 달려있던 것도 배크기에 비례한 것이라 이해할만하다.
한편 전라좌수영귀선은 충무공이 부장 나대용으로 하여금 만들게한 거북선이었다.
이배에는 좌우에 8쌍씩 달려있었던 것을 보면 크기가 셋중 제일 작았던게 분명하다. 기록에 보면 전란중에 전라좌우수영과 충빈수사휘하에 속한 전선은 약l백60척이었다.
이밖에 충무공이 새로만든 전선이 35척이었다.
도합 2백척. 그중에 절반 이상이귀선이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리고 그 크기가 대충 3가지로 달랐으리라고 짐작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기록에 따라 거북선의 노수가 새가지로 다른 것도 이렇게 보면 조금도 이상할게 없다.
이렇게 보면 새로 발견된 흥양현감의 전승보고서는 거북선의 신비를 푸는데에도 중요한 열쇠가 될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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