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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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양에서는 부활절과 함께 봄이 온다.
이때를 전후해서 꽃들이 온통 거리를 장식하고, 꽃가게엔 사람들이 몰린다.
부활절만 되면 모든게 밝아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종교를 떠나서라도 이 계절을 마냥 즐거워한다.
옷도 새것으로 갈아 입는다.
나무나 부싯돌을 부벼서 새들을 일으켜 음식을 만들고, 머리에도 꽃들을 담뿍 꽂은 모자를 쓰고….
이렇게 부활절은 즐겁기만한 날이다.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것이다.
그것은 세계의 어느 곳에서나에부터 지켜온 봄의 제전과도 부합된다.
그러나 봄을 알리는 부활제의 기쁨속에서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것을 잊고 있다. 애써 잊으려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예수가 드디어 잡혀가게 됐을 때 제자들은 모두 그를 버리고 도망쳤다. 예수도 그때 도망 할 수는 있었다.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피에타」상을 보지않더라도 인간예수에게 있어 죽음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의 경우와 조금도 다를바 없었다.
그는 그냥 죽음속에 걸어들었다. 그는 군중에게 호소하여 직접저항운동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예수도 그런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여겼다. 제자들도 물론 그러기를 기대했었다.
「유다」의 배반도 실은 그렇게 맞서지 않은 예수가 불만스러웠기 때문이라고 풀이하는 학자도 있다.
결국 그는 고등법원의 재판을 받아 사형의 선고를 받고 「로마」총독「빌라도」에게 인도되었다.
군중의 반발을 두려워한 나머지 「로마」의 힘을 빌기로 한 것이다.
「빌라도」자신은 예수를 무죄라 여겼으나 치안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십자가에 못박기로했다.
십자가의 형벌은 노예를 처형할 때 쓰던 방법이었다. 「키케로」에 의하면 그것은 가장 잔혹한 것이었다.
「유다」의 지도자가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긴 것은 책임을 전가해서 군중의 반발을 누르려 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잔인하게 그를 처형하려 했던 것이다. 「유다」교의 풍습인 돌팔매질보다 더 잔인하게-.
때마침 봄잔치가 한창이었다. 각지에서 사람들이「예루살렘」에 몰려들었다. 그러나 한때 그를 반겼던 군중들도 이젠 그에게 등을 돌렸다. 그에게 육실한 제자들조차 스스로의안전을 위해 그의 곁을 떠났다.
「피에르·데라·프란체스카」파수꾼들이 백관을 지키다 졸고 있다.
그리고 예수는 오른손에 승리의 표지인 십자교의 깃대를 들고 우뚝 서있다. 아무도 부활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부활절행사의 마지막 주일에 접어든다. 부활의 기쁨에 젖기에 앞서 예수의 고뇌를 되씹어 보는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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