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제 없어 진통제로 환자 수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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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무정부 상태에 빠진 바그다드의 한쪽에서는 약탈 행위가 잇따르고 있지만 바그다드의 병원들은 의약품 부족으로 심각한 인도적 재난 상태에 직면해 있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9일 "바그다드 알킨디 병원 의료진은 미군의 폭격으로 다친 환자를 수술하면서 마취제 대신 마취 성분이 든 진통제를 사용하고 있다"고 바그다드발로 보도했다. 워낙 수술 환자가 몰리다 보니 마취제가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매일 계속되는 폭격과 교전으로 민간인 부상자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의약품 공급은 중단된 상태다.

바그다드 시내 12개 주요 병원은 몰려드는 환자들로 며칠 전부터 포화 상태에 이르렀지만 의약품 공급은 물론 상수도와 전기 공급까지 끊겨 적절한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형편이다. 알킨디 병원의 한 간호사는 "어제 교전이 벌어진 후 단 한시간 만에 10여명의 부상자가 병원으로 실려 왔다"며 "이들을 수용할 더 이상의 병실도, 약품도 없다"고 말했다. 메디컬 시티 종합병원의 경우 비상용 발전기를 동원해 총 27개의 수술실 가운데 6개를 사용하고 있으나 지난 나흘간 쉬지 않고 가동하는 바람에 발전기 작동이 곧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고 신문은 전했다.

밤낮없이 환자들을 돌봐온 의료진의 체력도 한계에 이르렀다. 바그다드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의 한 관계자는 "개전 이후 병원들은 최소한의 인원으로 환자들을 감당하고 있다"며 "의료진은 사흘간 한숨도 자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롤랜드 후겐 벤저민 ICRC 대변인은 "시가전이 계속 확대된다면 바그다드 의료시설들은 머지않아 완전 마비 상태에 이를 것"이라며 "세계 각국에 식량과 의약품 조달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유엔 측은 7억2천만달러 상당의 인도적 구호물자를 이라크로 운송 중이라고 밝혔다.

신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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