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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 날 밝자 "후세인 끝났다" 민심 돌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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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개전 21일째, 미군의 바그다드 진입 닷새 만인 9일, 미군이 바그다드 시내 전역에서 기갑부대를 앞세우고 나타나자 바그다드는 치안 공백 상태로 돌변했다.

주민들은 거리로 쏟아져나와 미군 병사들에게 V자를 내보이며 환호했고, 일부는 무정부 상태를 틈타 상점과 주택을 약탈했다.

티그리스강 동쪽에 저지선을 쌓고 산발적인 반격을 시도하던 이라크의 공화국수비대는 저항을 포기했다. 지휘부가 와해된 상태에서 더 이상 저항은 무의미하다는 자포자기 심리가 급속히 이라크군 진영에 퍼졌다.

◆연합군 쪽으로 돌아선 민심=바그다드 주민들의 반(反)후세인 움직임은 동이 트면서 시작됐다.

밤 사이 미 제1해병원정군의 일부 병력은 바그다드 동부를 흐르는 디얄라강을 건너 서민 거주 지역인 사담시티에 접근했다.

AFP통신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이뤄진 교전으로 미군 여섯 명이 부상하는 등 양측이 격렬하게 공방전을 벌였지만 새벽 미명과 함께 미군이 사담시티에 첫 발을 들여놓았다"고 보도했다.

미군이 이라크군을 패퇴시키면서 사담시티에 들어오자 밤새 숨을 죽이며 전황을 주시하던 주민들은 바그다드 함락이 임박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고 통신은 전했다.

이같은 민심의 변화는 미군이 바그다드 중심부에 기습 진입했던 지난 7일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라크 국영TV는 개전 이후 줄곧 이라크 남부 전선 곳곳에서 이라크군이 연합군을 격퇴시키고 있으며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전화(戰禍)에서 이라크를 구해낼 것이라고 보도해 왔다.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바그다드 옆구리까지 파고든 미군이 기습적으로 시내에 진입, 후세인 정권의 심장부인 대통령궁을 장악하자 이라크 민심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정권의 상징인 대통령궁이 연합군의 수중에 떨어졌다는 사실에 이라크인들의 저항 의지가 급속도로 약화됐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이라크 병사들도 민심의 추(錘)가 연합군 쪽으로 급격히 기울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총을 버리고 진영을 속속 이탈했다.

◆반(反)후세인 진원지 사담시티=처음으로 반 후세인 민중봉기가 일어난 바그다드 동북부 사담시티는 수니파 정권인 후세인 측으로부터 탄압을 받아온 시아파 서민들의 집단 거주 지역이다.

미군 측은 후세인 정권에 반감이 쌓인 이 지역을 반 후세인 봉기의 최적지로 꼽아 왔다. 미군이 전력 분산이라는 모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바그다드 남동부에 진격한 제1해병원정군을 쪼개 서둘러 이 지역에 투입한 데는 이런 계산이 깔려 있었다는 게 외신들의 분석이다.

연합군의 승부수는 맞아 떨어졌다. 이 지역 주민들은 이라크군의 총성이 잦아들며 군인들이 퇴각하자 "후세인 정권은 끝났다"고 외치며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또 "부시 만세"를 연호하며 미군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고 AFP통신은 보도했다.

환영 인파와 함께 사담시티를 통과한 미 해병은 이날 오후 6시쯤 티그리스강 동쪽의 팔레스타인 호텔 인근까지 무혈 입성했다. 이라크 임시 공보부가 설치돼 있던 호텔 주변에 진지를 쌓아놓고 저항했던 이라크군은 총기와 탄약을 버리고 종적을 감췄다.

◆바그다드 전방위서 압박=이에 앞서 이날 새벽 미군의 바그다드 공략은 ▶시내→시외 ▶시 북부→시내 ▶시 동부→시내 등 전방위에서 펼쳐졌다.

이라크군의 전력이 예상을 넘어 크게 약화된 데다 군.민 간의 결속력도 급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분석에 따라 미군 지휘부가 속도전을 택한 것이다.

지난 7일 티그리스강 서쪽의 대통령궁을 장악한 미 제3보병사단은 이 곳을 거점으로 시 서부 외곽 사담 공항에 진지를 확보한 본진 병력과 연합해 이라크군에 압박을 가했다.

이와 함께 미 제1해병원정군의 일부 병력은 이날 새벽 바그다드 동부를 흐르는 디얄라강을 건너 사담시티로 기습 진입했다.

AFP통신은 "이날 작전은 티그리스강 동쪽에서 저항하고 있는 이라크군을 강 서쪽의 미군과 협공하기 위해 배후를 치는 작전이었다"고 분석했다.

또 사담 공항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미 3사단 일부 병력은 바그다드 북부 지역으로 돌아가 연합군이 보급 기지로 삼으려는 무테나 공군기지를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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