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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이 문제] 천안 옛도심 육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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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 유량동에 있는 원성천 지하도로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지하도 위에 유량육교가 있지만 이용자가 거의 없다. 채원상 기자

천안 옛도심 곳곳에 설치된 육교들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1970~90년대에 설치돼 시설이 낡고 장애인·노약자를 위한 엘리베이터나 경사로가 없어 불편하다. 주변에 횡단보도가 생겨 이용자가 거의 없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무용지물로 변하고 도시 미관을 해치는 옛도심 육교들을 점검했다.

천안시 유량동의 1번 국도(천안대로)에 설치된 유량육교. 1992년 놓인 육교이다 보니 곳곳에 페인트가 벗겨지고 녹이 슬어 흉물이 됐다. 생태하천 조성사업 중인 인근 원성천 주변에 최근 산책로와 자전거도로가 생겼다. 주민과 학생들은 육교와 10m도 떨어지지 않은 산책로를 따라 운동이나 등·하교를 한다. 이른 아침이면 운동하러 온 주민과 학생들이 원성천 다리 아래 지하도를 통해 오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처럼 다리 밑에 지하도가 생기고, 육교를 오르내릴 때 이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나 경사로가 없어 노인·장애인은 물론 대다수 주민도 육교로 다니지 않는다. 게다가 요즘 짓는 육교는 대부분 미끄럼 방지를 위해 보행 구간에 합성고무를 깐다. 하지만 유량육교는 콘크리트 보도라 겨울에 눈이 오면 계단이 빙판으로 변해 미끄러져 다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육교는 오가는 사람이 없고 천안시 행사를 안내하는 대형 현수막 게시대로 전락했다.

천안시 신부동에 설치된 신안육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경사진 언덕 위에 있는 육교의 양쪽에 횡단보도가 있다. 주민 대부분이 육교 대신 횡단보도를 이용하고 있다. 이곳 역시 경사로와 엘리베이터가 없어 노약자들이 이용을 꺼린다. 육교 위치도 애매모호하다. 길을 건너 신부동에 있는 법원이나 반대 방향의 주민센터로 가려고 힘들게 계단을 오르내리며 육교를 건널 필요가 없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수월하기 때문이다.

천안 지역에 설치된 육교는 모두 18개소. 이 가운데 2000년 이전에 설치된 곳이 14개소에 이른다. 조한규(36·신부동)씨는 “유량육교의 경우 모든 사람이 지하도를 이용해 육교가 꼭 필요한지 의문이 들고, 신안육교는 주변에 횡단보도가 있는데 힘들게 육교 계단을 오르내릴 필요가 없다”며 “두 육교 모두 녹이 슬어 보기에도 흉해 사람들이 더욱 이용하기를 꺼린다”고 말했다.

철거 비용 들고 사고 위험 높아”

천안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낡은 육교를 개선할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지만 철거에는 난색을 보인다. 현재 설치된 육교를 없앨 경우 무단횡단으로 인한 안전사고 위험이 높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유량육교의 경우 이용자가 거의 없지만 장마철에 지하도가 물에 잠기면 횡단보도가 없기 때문에 도로를 건널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신안육교는 언덕 위에 있다 보니 철거한다고 해도 지형상 횡단보도를 설치할 수 없다는 게 시의 설명이다.

 시는 또 철거 비용 확보와 철거 후 안전대책 마련도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육교 1곳을 철거하려면 2억원의 비용이 드는 데다 육교를 철거한다고 해도 횡단보도를 설치할 수 없는 곳의 보행대책을 마련하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무단횡단을 유발해 사고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게 시의 설명이다. 노인과 장애인의 이동권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상당수 육교 주변은 경사로나 엘리베이터 설치에 필요한 공간이 부족하다.

 시는 지난해 교통규제심의를 통해 시 외곽에 있던 성환읍 성월육교와 직산읍 시름재육교를 철거했다. 하지만 두 곳은 모두 도로 신설에 따른 우회 차선을 확보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철거했다.

 천안시 건설도로과 관계자는 “이용자가 없다고 육교가 쓸모없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육교가 없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 위험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 육교가 오래 전에 설치되다 보니 불편한 점이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철거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므로 노약자들이 이용하기에 불편하지 않도록 주변 횡단보도 개설 같은 개선책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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