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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 新중년의 이 몹쓸 사랑!] 그녀를 함부로 대하라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 재니스 조플린. 1960년대 말 사자갈기 머리에, 찢어지는 목청으로 지축을 뒤흔들다 27살에 죽었다. 당대 최고의 로커였다. 마약에 혀가 말린 채 우는지 웃는지 모를 괴성을 지를 때 전해져 오는 전율의 체험을 잊을 수 없다. 그녀를 사랑할 수 있을까.?

2000년대의 에이미 와인하우스. 어둡고 끈적끈적하면서 동시에 서늘한 목소리의 블루스 로커. 대표곡 제목이 ‘Rehab(재활)’이듯이 그녀의 생은 곧 파탄과 재활치료의 반복을 의미했다. 블루지하다는 표현의 상징처럼 느껴지는 그녀도 2011년 27살에 갑자기 죽었다. 원인은 마약 과다 복용이었다. 그녀를 사랑할 수 있을까.

멋진 여자와 내가 사귈 수 있는 여자 사이의 간극

객석에서 재니스나 에이미를 바라보며 망아적 도취의 열광을 느낀다. 사랑하는 뮤지션으로 손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런데 그 비슷한 여자를 현실에서 만났을때, 에취(!), 사랑할 수 있냐고? 그녀는 담대하고, 거칠고 그래서 멋진데 사랑할 수 있냐고? 사귈 수 있냐고?

예술 혹은 상상세계에서는 광란의 파도를 타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얌전한 규수’를 찾는 것이 한국 남자다. 다른 나라 남자들도 그런가? 프랑스 영화 <베티블루>에서 착한 사내 조그가 사랑한 여인이 바로 광분의 몸부림을 치는 베티였다. 결말은 어땠을까. 병석의 베티를 베개로 덮어 죽여주는 것이 조그의 최종선택이었다. 아! 무섭다.

그렇게 거친 여자, 사나운 여자는 실제로 드물지만 이른바 잘난 여자, 기 센 여자는 흔히 있다. 그중엔 정말 동경을 안겨주는 멋진 인물도 있다. 그런데 그 멋진 여자와 내가 사귈 수 있는 여자 사이의 간극이 의외로 크다. 우리는 그런 사례를 많이 알고 있다.

역시 프랑스 영화 <내겐 너무 이쁜 당신>에서 회사 사장 베르나르의 애인은 못 생기고 뚱뚱한 여비서 콜레트다. 그의 아내는 너무 우아하고 지적이고 세련됐다. 무엇보다 엄청난 미모를 자랑한다. 중년 사내들은 못난 애인에게 집착하는 베르나르의 심정을 잘 이해한다. 박완서 소설 <도시의 흉년>에도 유사한 설정이 그려져 있다.

못난 가장 지대풍씨는 발기부전이다. 집안을 풍족하게 일으킨 잘난 아내 민여사 앞에서는 남성이 일어나질 않는다. 지대풍이 남몰래 살림을 차려준 여인은 다리를 저는, 왜소한 체구의 못생기고 무식한 여자였다. 지대풍의 죽은 남성은 그녀를 만났을 때만 살아났다. 역시나 중년 사내들은 지대풍의 상태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잘난 여자, 억센 여자 또는 대단한 여자, 이른바 남자를 압도하는 여자는 어떤 마음으로 만나야 하는 걸까. 한번도 남녀로 만나본 적은 없지만 방송 앵커 백지연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뭐라 설명할 길 없는 위축감을 느낀다. 함께 출연한 다른 자들도 비슷한 심정을 토로하는 걸 보면 혼자만의 느낌은 아닌 것 같다. 일로 친해진 아나운서 김성경도 유사하다. 의외로 애교도 많고 러블리한 품성이지만 타고난 게 ‘도도본색’이어서 그 도도함에 위축감을 느끼곤 한다. 친하다 하지만 함부로 농담을 걸 엄두가 나지 않는 여인이다.

사업하는 여성, 저명한 여성 가운데 그렇게 ‘센’ 부류가 많다. 간혹 그런 여인에게서 하소연을 듣는 경우가 있다. 남자들 왜 그렇게 못났냐고. 자기가 얼마나 참하고 여성스러운데 왜 그걸 몰라주느냐고. 자기를 압도해줄 남자가 왜 그리 없느냐고. 두 번 이혼한 유명 여자 탤런트가 있는데 두 번 다 남편의 폭행이 이혼사유였다. 그중 전 남편 한 명을 아는데 도무지 폭행을 할 만한 위인이 못 되는 소심한 내과의사다. 이른바 ‘열폭’ 즉 열등감 폭발이 폭행의 배경이었을 것이다. 아, 사례가 무궁무진 떠오른다. 남자들 참 못났다.

잘나고 대단한 여자에게 어떤 남자가 어울릴까. 더 잘나고 더 대단한 남자를 꼽는 건 하나마나한 소리다. 기 센 여자가 더 기 센 남자에게 압도되길 원할까. 성공한 여자가 더 성공한 사내를 애인이나 배우자로 원하고 있는 걸까. 설사 그렇다 해도 잘난 커플 간에 둘 사이를 엮어주는 배경이 ‘잘남’일 수는 없다. 잠깐 공산주의 투쟁 이론의 도움을 받아보자. 마오쩌뚱이 혁명투쟁을 할 때 집필한 ‘모순론’이라는 팸플릿이 있다.

세상의 모순관계는 적대적 모순과 비적대적 모순으로 나뉜다고. 적대적 모순은 지주와 농노 관계처럼 타도와 극복의 대상이지만 비적대적 모순은 정반대 속성을 지닌다고. 가령 전기의 음극과 양극, 낮과 밤 같은 것. 그중 대표적 사례로 꼽은 것이 남녀관계였다. 남자와 여자관계는 상호보완적으로 결합하여 전체를 구성하는 비적대적 모순관계라고. 기 센 여인에게서 느끼는 위축감은 그러니까 전통적으로 남성성의 전유물로 여겼던 성질이 여자에게 나타나서 생겨나는 현상이다.

답은 아주 쉽게 나온다. 남성성이 두드러진 여성에게는 여성성을 품고 대한다. 그럴까? 말이 쉽지 사랑과 섹스에서는 그 같은 역전이 의도대로 쉽게 발휘되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쫀심(자존심)’의 훼손을 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다 보니 멋지고 대단한 여자를 연모하게 되었지만 어찌 비굴한 기분까지 겪어가며 사귀겠는가.

해법을 찾아보자. 잘난 여자? 팽하고 외면해 왔었다. 그러나 오 마이 갓! 어쩌다 보니 바로 그런, 전형적으로 기세고 잘나고 대단한 여자를 사랑하게 됐다. 그녀와 사귀고 싶고, 잠자리를 갖고 싶다. 그렇지만 오마이 갓! 무서워서 가슴부터 벌렁벌렁하니 어찌한단 말인고.

함부로 대하는 것과 무례한 건 천양지차

해법까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도움되는 관계 형성의 첫 출발이 있다. 함부로 대하기 바로 그것이다. 그녀를 함부로 대할 수 있어야 사귈 수 있다. 이건 철칙이다. 그런데 잠깐. 잘난 여자에게 함부로 대해보라. 그녀들은 남성 지배 사회의 억압적 분위기를 뚫고 치솟은 존재다. 함부로 대했다가는 귀싸대기 맞는다. 내가 경험한 최고심급의 기 센 여인으로 한국일보 모 기자가 있는데 젊은 날 함부로 친한 척 했다가 맞아 죽을 뻔했다. 함부로 대하는 것은 그러니까 무례한 태도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어릴 때부터 예쁜 여자에게 미모를 칭송해봐야 씨알이 먹히지 않는 것처럼 진짜 잘난 여자는 자신의 잘남을 지겨워하는 면이 있다. 그러니 그 잘난 면모에 대해 무심처사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녀의 잘남에 무심처사인 것은 곧 그녀를 ‘여자’로 대한다는 것을 말한다. 직업이나 평판, 사회적 지위 이전에 여자는 여자고 남자는 남자다. 사모하는 잘난 그녀를 여자로 대하라는 것. 무례하지 않게 함부로 대하라는 이 심오한 비법을 깨우친 사람은 아나운서 김성경을 찾으라. 외롭단다.

김갑수 시인ㆍ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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