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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단 + 라울 = 무적콤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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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이의를 제기할지 모르겠지만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축구클럽은 레알 마드리드다. "

지난해 창립 1백주년을 맞은 레알 마드리드의 역사를 정리한 책 '하얀 폭풍(white storm)'을 쓴 영국인 필 볼이 이 책의 서문에 적은 글이다. 9일 새벽(한국시간) 격돌한 두 팀의 경기 결과를 예상이라도 했던 것일까.

레알 마드리드의 지네딘 지단(右)이 맨체스터 로이 킨의 깊숙한 태클을 껑충 뛰어 피하고 있다. [마드리드 AP=연합]

세계 2대 빅 클럽의 맞대결은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의 완승으로 끝났다. 레알 마드리드는 홈구장인 베르나베우 경기장에서 벌어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 잉글랜드의 자존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3-1로 가볍게 누르고 통산 10회 우승을 향한 힘찬 전진을 계속했다.

"피고! 피고! 피고!"

전반 12분 루이스 피구의 선제골이 터지자 경기장은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 함성으로 진동했다(스페인 사람들은 알파벳대로 발음한다. 호나우두는 '로날도'가 된다). 지네딘 지단과 짧은 패스를 주고받은 피구는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오른발로 가볍게 볼을 감아올렸다. 크로스처럼 보이던 볼은 크게 휘면서 오른쪽 골 그물에 정확히 꽂혔다.

"르르르르라우우우울!"

선수 소개 때 장내 아나운서는 라울의 이름을 이렇게 발음했다. 라울에 대한 레알 마드리드 팬들의 신뢰와 사랑을 강조한 표현이었다. 전반 28분 마침내 그가 해냈다. 지단이 수비수 사이로 절묘하게 찔러준 볼을 받은 라울은 수비수를 등지면서 왼발 슛, 볼은 골키퍼 파비앵 바르테즈와 왼쪽 골대 사이를 통과해 그물을 갈랐다. 챔피언스리그 통산 득점 1위(42골)의 골잡이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후반 4분, 또 라울이었다. 오른쪽을 돌파한 피구가 특유의 헛다리짚기 드리블로 수비를 허물어뜨린 뒤 정면으로 패스, 아크 정면에서 라울이 강력한 중거리포를 터뜨렸다.

3-0으로 스코어가 벌어진 뒤에야 맨체스터의 다리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반 7분 라이언 긱스의 강한 슛을 골키퍼 카시야스가 가까스로 쳐내자 반 니스텔루이가 방아찧듯 헤딩슛, 올 챔피언스리그 통산 11번째 골을 뽑아냈다. 역대 챔피언스리그 한 시즌 최다골 신기록이었다.

그러나 이날의 스타는 '중원의 사령관' 지단이었다. 지단은 신기의 발놀림으로 개인기의 진수를 보여줬다. 멈칫멈칫하며 상대의 타이밍을 뺏는 드리블, 양발은 물론 발바닥까지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페인팅, 달려가는 선수의 속도까지 계산해 정확하게 공간에 떨어뜨려주는 패스. 지단 앞에서 잉글랜드의 축구영웅 데이비드 베컴은 한없이 작아보였다.

레알 마드리드 호베르투 카를로스의 30m 직접 프리킥이 옆그물을 흔들면서 경기는 끝났다. 카를로스는 CF를 함께 찍으며 친해진 베컴에게 유니폼을 벗어줬다. "빨리 이 유니폼을 입고 함께 뛰자"는 뜻처럼 느껴졌다. 장중한 테너 목소리의 레알 마드리드 찬가가 울려퍼졌다. 8만 관중이 모두 일어서 노래를 함께 불렀다.

2차전은 23일 맨체스터의 올드 트래퍼드 경기장에서 벌어진다.

한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아약스(네덜란드)와 AC 밀란(이탈리아)의 8강전은 0-0으로 끝났다.

마드리드=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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