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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E 여성 지위는 … '같기도'와 '꺾기도'?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예식 후에는 신부측과 신랑측이 나뉘어 파티를 벌인다. 신부는 물론이고 하객도 화려한 드레스를 입는다.

"여러 아내를 두는 남자에게 돈을 더 주는 법을 만들자."

이게 웬 멍멍이 소리인가 싶겠지만 UAE 의회에서 나온 공식 발언이다.

"아내 한 명만 고집하니까 나라에 노처녀가 수두룩 빽빽이다."

점입가경. 하지만 화내기엔 아직 이르다.

"얼마 전 국내(UAE) 노처녀 수 통계를 봤는데... 어휴, 얼마나 많던지.. 겁나서 여기서 공개도 못하겠다."

자, 화룡점정이 기다린다.

"노처녀는 애도 안 낳으면서 국가 경제에 부담이 된다."

지난 4월, 연방의회(FNC) 의원 아흐마드 알 아마시는 이마라티(UAE 국적자) 남성이 경제적 부담 때문에 여러 아내를 두지 못하고 있고, 이 때문에 노처녀 증가 등 사회 문제가 심각하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UAE 공기업들은 미혼 노동자에게 급여의 40%, 기혼자에게는 60%를 주거비로 제공한다. 그런데 아내가 여럿이어도 이 비율은 똑같다며, 법을 개정해 이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한집 살림' 비용 갖고 '두집 살림' 하려니 얼마나 고생이 많겠나, 더 줘야 한다 이거다.

UAE 여성들이라고 이런 말 듣고 가만 있지는 않는다. 신문 오피니언 란에 여성 논설위원과 독자들의 반론글이 쏟아졌다. 논쟁이 붙었다. 한 여대생은 "노처녀가 국가경제에 부담이라니, 나 모르게 나라에서 미혼여성에게 연금이라도 주고 있었단 말이냐"며 꼬집었다. "이슬람에서 일부다처를 허용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예외적 허용'이지 장려는 아니다"는 거다. 하지만 모든 여성의 생각이 이렇다고 할 수는 없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왔다는 또다른 젊은 여성은 "내 어머니는 아버지의 두번째 부인인데, 난 그게 부끄럽지 않고 우리 가족은 평화롭다"고 주장했다.

UAE의 여성 지위는 어떻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개콘의 추억 속 코너 '같기도'가 딱이다. 일단 중동국가 중에서는 상당히 양호하다. 여성운전을 금지해 국제뉴스에 오르내린 사우디와 달리 운전은 물론이고 얼마 전에는 여성 공군 조종사도 나왔다. 공공기관 일자리의 60% 이상을 여성이 차지한다. 여성의원, 여성 장관이 여럿이고 UN대사도 여성이다. 그런데 의회에서 "애 안낳는 노처녀는 국가 부담" 소리가 나온다. 이건 여성 지위가 높은 것도 아니고 낮은 것도 아니다.

또다른 개콘 코너 '꺾기도'스러운 면도 있다. 지난주 신문 피처 기사에는 국영 에너지기업 '가스코'의 홍일점 엔지니어로 일하는 당찬 스물셋 여성이 등장했다. '와, 젊은 세대는 확실히 다르구나' 싶었는데 웬걸, 아빠가 딸 혼자 회사가는 걸 허락 안 해서 입사하고 두달간 아빠 차로 출퇴근했단다. 그 부분을 읽는데 뭔가 몹시 허를 찔린 듯한 이 기분. 갑작스러운 꺾음으로 상대방을 공황상태에 빠트리는 꺾기도의 진수였다람쥐.

애매한 여성 지위는 결혼 세태에도 반영됐다. 부유한 GCC 국가들에서 최근 몇년 새 미혼여성이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노처녀'의 정확한 정의가 없다보니 어떤 조사에서는 UAE내 3만명, 또다른 조사에서는 15만 명이라고도 한다.

신혼집, 드레스, 보석류를 장만하는 데에 신랑의 지출이 크다. 월급여 2만디르함(약600만원) 이하이면서 자국민 여성과 결혼하는 UAE 남성은 정부의 결혼펀드에서 7만디르함(약 2100만원)을 지원받는다.

우선 돈 문제가 크다. 지난달 현지 언론 '더내셔널'은 이마라티의 막대한 결혼식 비용을 특집으로 다뤘다. 식대에 드레스에 장신구까지 합하면 유별나게 하지 않아도 한화 3000만원 이상 들고, 호화 예식의 경우 1억원이 넘게 든다는 거다. 남의 이목을 중시하고, 손님 접대를 뻑적지근하게 하는 전통 때문이다. 이 나라엔 축의금이 없어 전부 순지출이다.

신랑이 신부의 집에 줘야 하는 지참금도 문제다. 역시 수천만원이 드는데, 신부 국적에 따라 차이가 크다고 한다. 같은 아랍이라도 UAE보다 국민소득이 적은 오만이나 레바논 여성과 결혼하면 부담이 적다고 한다. 이렇다보니 경제적 문제로 외국 여성과 결혼하는 자국민 남성이 많아진다는 거다.

여기에 이마라티 여성들의 높아진 교육수준과 기대치도 한 몫 한다. 아랍 남성이 원하는 신부 나이는 여전히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인데, 그 연령대 이마라티 여성은 결혼보다 대학과 취업을 원하니 미스매치다. 게다가 이마라티 여성이 외국 남성이나 자신보다 사회경제적 위치가 낮은 남성과 결혼할 경우 가문이나 주변 시선이 곱지 않다. 그래서 2011년 이마라티 남성 2000명이 외국인과 결혼한 반면 외국 남성과 결혼한 이마라티 여성은 500명뿐이었다.

정부는 심각성을 느끼고 남자들 대상으로 '이마라티 여자와 결혼하라'는 교육까지 벌이고 있다. 정부가 운영하는 결혼펀드는 신랑에게 최대 7만디르함(약 2100만원)의 비용을 지원하는데, 이것 역시 자국민끼리 결혼할 때만 준다. 그래도 예식비와 지참금을 충당하기에 부족하다는 여론이다.

신부 집안에 돈을 준다는 게 여성 존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 반대다. 이혼이나 남편 유고시를 대비한 보험금 성격인데, 여자는 원치 않게 이혼 당해도 별 수 없고 남편이 죽으면 살 길이 막막한 그 지역의 현실이 전통으로 반영된 것이다. UAE보다 여성 지위에 보수적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지참금 비용이 더 큰 사회 문제가 되는 것을 봐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마라티 여성들이 겪는 이른바 '짝없는 A급 여성' 현상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며 발생하는 것이니, 이 역시 '같기도'스럽다. 25세 이상 미혼여성이 늘었다는 건 여성 지위가 높아진 것도 아니고 낮아진 것도 아니다. '지참금'과 '골드미스'라니 양극단이 만난 듯하다.

마지막으로 허를 찌르는 '꺾기도' 한 판 들어간다. 이제껏 UAE 여성 지위에 대해 별 웃기는 나라도 다 있군, 내려다보듯 생각해온 독자라면 필경 공황상태에 빠질 터.
2013년 세계경제포럼(WEF)의 남녀격차보고서에서 한국은 136개국 중 111위, UAE는 우리보다 두 계단 위인 109위였다.

심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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