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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얼 받들어 열심히 삽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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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캘리포니아」주도(주도) 남쪽에서 60km떨어진「로다이」시에 안중근 의사의 손자 안웅호씨(46)일가가 살고있다.
안 의사의 외동며느리이자 웅호씨의 어머니인 정인모 여사(72)와 증손자 보영군(15)·증손녀「엘리자베드」양(14)·「캐런」양(6)이 그 직계가족.
해마다 3월이 되면 3월26일의 안 의사 기일(기일·올해가 69주년)을 고비로 나라 위해 몸바친 조부를 추모하고 기리는 이들 가족들의 조국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동경은 더없이 크다.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캠퍼스」)을 졸업한 웅호씨는 미국 심장학회의 인정을 받고있는 심장전문의사.
「로다이」시에서 병원을 개업하면서「로다이·미모리얼」병원에도 회진을 나가고 있다.
『지금도 할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또 숭배하고 있습니다. 조상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도 더욱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읍니다』고 웅호씨는 말했다.
그는 때로 본국의 명사들로부터 정치나 직위의 권유를 받은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보다도 할아버지의 이름 때문에 그러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웅호씨는 자신은 의료업이 천직인 것 같아 그러한 권유에 흥미를 갖지 않았다고 했다.
미국에 와서 청·장년기를 보낸 그는 노후에 언젠가는 조국에 나가 뜻 있는 의료사업을 하는 것이 평생의 소망이라고 했다.
안 의사의 며느리 정 여사는 평생에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던 시아버지 안 의사를 친척어른들로부터『임꺽정과 같이 의협심에 불탔던 청년』으로 들었다고 회상했다. 부군 안준생씨는 6·25 이듬해 피난지 부산에서 간암으로 별세했는데 2살 때 아버지 안 의사가 돌아가 얼굴을 기억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유복자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정 여사는 상해임시경부로 망명한 부모를 따라 중국에서 외국인 자제들만 다니는 상해호강대학 영문학부를 졸업한 신여성.
지금도 우리말 외에 일어·중국어·영어를 유창하게 한다. 정 여사가 안 의사 가문의 외동며느리가 된 것은 역시 상해에서였다.
결혼 후 슬하에 3남매를 두었지만 장녀와 막내딸은 조국광복 후 미국으로 떠났으며 아들 웅호씨 하나만 데리고 부군과 함께 귀국했던 때가 공교롭게도 6·25가 나던 1950년 6월18일.
이듬해 남편을 잃은 정 여사는 외동아들(안 의사의 손자)마저 미국에 살고 있는 누이들 곁으로 보냈다.
안 의사의 유일한 며느리인 정 여사는『32세의 위대한 일생을 조국에 바치고도 유해나마「내나라」에 묻히지 못한(안 의사 묘소는 현재 중공 여순 땅에 있다) 시아버지의 한과 43세란 한창나이에 사별한 남편의 한이 아직도 자신의 가슴에 함께 응어리져 있다』고 했다.
정 여사는『조국이 완전히 국권을 회복한 후에 백두산 정상의 천지에 내 유해를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긴 시부(시부)의 뜻을 아직도 풀 수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조국통일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아들 웅호씨를 비롯해 장녀 선호씨(49)·막내딸 연호씨(42)가 모두「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출신으로 훌륭하게 장성했다.
선호씨는 부군 한성곤씨(원자력회사「벡텔」중역)와의 사이에 5남매를 두고「샌프란시스코」에서 살고있다.
안 의사는 2남1녀를 두었는데 장남「분도」(세례명)는 12살에 노령(노령)「블라디보스토크」근처에서 죽었고 고명딸 현생씨는 58세로 돌아갔다고 안 의사 기념관장 이문욱씨는 말했다.
이 관장은 오는 9월2일 안 의사 탄신 1백주년기념식에 안 의사의 장손 웅호씨를 고국에 초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 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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