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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트렌드] 게임도 체감형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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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 게임과 스포츠가 만난다. 스크린에 펼쳐진 가상 골프장을 향해 이용자가 공을 때리고 있다.

게임의 공간이 바뀌고 있다. 사이버 공간은 더 이상 사각의 모니터에 갇힌 '죄수'가 아니다. "쫘~악"하고 모니터를 뚫고서 진짜 현실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 나온다. 피부에 착착 감기는 가상 현실.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을 연상케하는 꿈 같은 세상이 닥쳐 온다. 주인공은 바로 '체감형 게임'이다.

프로게이머들은 "평면 모니터 앞에서 하루 종일 조이스틱과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면 어깻죽지가 빠질 지경"이라며 "'스타크래프트'나 '리니지' 같은 온라인 게임이 체감형으로 바뀐다면 게임을 하는 방식과 문화 자체가 바뀔 것"이라고 전망한다. 먼 훗날의 얘기가 아니다. 체감형 게임은 벌써부터 현실을 흔들고 있다.

게임은 흔히 '공부의 적'으로 간주된다. 게임기만 만지작거리는 아이들을 보면 부모는 속이 탄다. 그래서 소니 플레이스테이션2의 '아이토이' 시리즈는 '체감'을 공략했다. 이용자가 게임의 주인공이 되는 식이다. 직접 화면에 등장해 춤을 추고, 영어 동화를 듣기도 한다. 네 살짜리 조카와 함께 '아이토이'를 즐긴다는 이상민(22)씨는 "체감형 게임 때문에 내성적이던 조카 성격이 훨씬 외향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가상 현실이 현실을 바꾸는 셈이다.

▶ 라켓을 들고 게임 속 캐릭터와 직접 탁구를 치는 "액션 핑퐁".

스포츠쪽에 미치는 여파는 훨씬 크다. 6일 서울 중구 신당동 해양엘리시움 빌딩 8층의 맨하탄 바. 실내에서 난 데 없이 "굿 샷!" "나이스 온!"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가 봤더니 열 평 남짓한 방에서 네 사람이 골프채를 휘두르고 있었다. 드라이버부터 퍼터까지 클럽도 다양했다. 실내 연습장식의 단순한 벽치기가 아니었다. 앞에는 가로 4m, 세로 3m 짜리 3D 대형 스크린이 걸려 있었다. 현실 스포츠와 게임이 절묘하게 만나는 풍경이었다.

공을 때리자 실제 화면 속으로 공이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하늘 높이 치솟던 공은 멀리 푸른 잔디 위에 뚝 떨어졌다. 타석에서 내려오던 이동일(33.회사원)씨는 "3D 시뮬레이션 기술이 게임을 진짜 스포츠처럼 만들고 있다"며 "게임한다는 기분으로 계속 즐겼는데 진짜 골프장에서도 통하더라"고 말했다. 제작사인 골프존 기획실의 홍승현 팀장은 "인터넷망을 활용, 스타크래프트의 배틀넷처럼 멀리 떨어진 친구와 경기를 하는 시스템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체감형 게임의 질주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벽만 보고 달리는 러닝 머신의 지루함도 공략한다. 게임개발사 하이윈은 지난해 온라인 게임 '천상비'를 제작, 무협 게임 부문 1위를 석권했던 회사다. 허종도 사장은 "그동안 축적했던 온라인 게임 기술을 러닝 머신에 쏟아 부었다"며 "3D 그래픽 화면을 보면서 달리는 체감형 게임 '고!고!(GO! GO!)' 개발을 최근 완료했다"고 밝혔다.

'고!고!'는 안방에 앉아서 천리 밖을 거니는 식이다. 갈매기가 끼룩대는 호주 시드니항 주변의 산책로, 녹음이 우거진 영국 런던의 하이드 파크, 에펠탑이 바라다 보이는 프랑스 파리 센 강의 산책로 등 버튼만 누르면 꿈결 같은 러닝 코스가 눈 앞에 펼쳐진다. 꽃밭을 지날 땐 자동센서가 향기를 내뿜고, 언덕길에선 러닝 머신의 경사가 절로 가파라진다. 현실 뺨 치는 가상 현실이 펼쳐지는 셈이다.

뿐만 아니다. 인터넷망을 통해 미국에 있는 친구와 뛰면서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최대 2000명까지 참가하는 마라톤 시합도 열 수 있다. 온라인 서버 기술이 취약한 미국과 독일 등에선 벌써부터 관심을 표시할 정도다.

직접 라켓을 들고 게임 속 캐릭터와 탁구를 치는 '액션 핑퐁'도 눈길을 끈다. 개발사인 디게이트는 '액션 핑퐁'으로 세계 3대 게임전시회인 유럽게임쇼에서 2002년 대상을 타기도 했다.

한국게임산업개발원 김진석 과장은 "게임이 단순히 보고 듣던 차원에서 이젠 피부로 느끼는 차원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차세대 체감형 게임의 화두는 '3차원 홀로그램'이다. 호서대 게임공학과 김경식 교수는 "레이저 광선을 이용한 홀로그램이 게임에 도입되면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선이 더욱 모호해질 것"이라며 "게임은 결국 인간의 오감(五感)을 모두 자극하는 쪽으로 진화해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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