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직수난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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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외국대사에게는 최고의 경칭을 사용하는 것이 관례다. 심장에서는「히주·익설런시」, 대화중엔「유어·익설런시」라고 한다 「미스터」보다도 사뭇 격이 높은 존재다.
물론 그것은 어느 개인의 영예를 위한 것은 아니다. 대사는 어느 경우나 그 정부를 대표하는 직책을 갖고 있기때문에 상봉국가에 대한 예의의 표현인 것이다. 이때의 예의란 적어도 국가를 대상으로 하고있어 적대국이 아닌 이상 최고의 정중함을 보여주어야한다.
따라서 대사는 치외법권과 불가침권과 같은 특권을 누린다. 소재국의 주권은 원칙적으로 대사관의 내부에 미치지 않는다. 형사범죄인이 관내에 숨어 있어도 소재국은 함부로 손을 뻗칠 수 없다.
다만 공관은 범인을 보호할 수 없게되어 있어 관헌이 요구하면 내놓긴 하지만, 그것도 절차가 존중된다.
이런 일도 있었다.「폴란드」에서「위진스키」대주교가 공산정권을 마다하고 미국대사관에 망명했었다. 7년인가 그 대사관의 울타리 안에서 은거했지만 공산정권도 달리 손을 쓰지 못했다.
「대사」라는 말은 고대「로마」의 정치가「시저」의 『「갈리아」전기』에서 처음 사용되었다고 한다.「심부름 꾼」을 존대한 말이었다. 따라서 초기의 대사들은 그렇게 신분이 높지 않았다. 15세기무렵「프랑의」의「루이」11세는 그의 이 발사를 사절로 파견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1459년「로마」교황「비오」2세는 역사상 최초로 외교사절의 신임장을 접수하며, 그 인물의 기준을 제시했다.『사신으로서 충분한 품성을 갖춘 사람』-.
15세기부터 통용된 대사의 요건중엔「신사」의 풍모가 포함되어 있다. 취미와 학력을 겸비하고 문학자·예술가·과학자와의 사교에 어색하지 않고 매사에 침착한 인물.
그러나「이상」보다는「정치」에 집착하는 경향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의 현실이다. 그렇게 「빼어난 대사」란 쉽지 않은 것 같다.
오늘의 국제정치는 사교계처럼 한가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그런 현실은 외교관들의 수난을 통해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언젠가「스페인」에선 미국원자력·잠수함이 해수를 오염시켰다고 외교분쟁이 일어났었다.「스페인」주재 미국대사는 그때 옷통을 벗고 문제의 해변에서 수영을 즐겨(?)야 했다.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은 생명의 위협이다. 유괴·납치·인질·피습은 물론이고 암살도 예사로 볼 수 있다.
「과테말라」·「수단」·「니코시아」·「레바논」의「게릴라」또는 시위군중은 근년에 미국대사들을 차례로 살해했었다. 바로 요즘엔「아프가니스탄」의 좌익「게릴라」들에 의해 다시금 미국대사가 살해되었다.
오늘의 국제사회에선 정치기술만 세련되어갈뿐 ,그「모럴」은 오히려 후퇴해 가고있는 증좌라 할 수 있다. 새삼 그 차가움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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