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광기의 글로벌 포커스] 통화전쟁 2라운드 … 한은만 천하태평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80호 18면

2014년도 절반이 지났다. “해놓은 것도 없는데 벌써 반년이라니. 세상은 또 왜 이리 어수선한지 일손이 안 잡힌다”는 경제인이 많다. 2014년의 출발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어느 때보다 희망에 부풀었다. 국내외 경제 모두 회복 흐름이 완연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주요 기관들은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3%대 중반으로 내다봤다. 한국 경제는 4% 선을 넘길 것이란 예측이었다.

그러나 반년을 보내면서 기대가 지나쳤다는 쪽으로 시각이 교정되고 있다. 세계은행은 최근 올해 세계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3.2%에서 2.8%로 낮췄다. 미국 경제 성장률은 2.8%에서 2.1%로, 신흥국 평균 성장률은 5.3%에서 4.8%로 각각 내려잡았다. 유로존과 일본의 성장률은 겨우 1% 선을 넘는 것으로 내다봤다.

중앙은행들 다시 돈풀기 모드로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미국의 올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8~3.0%에서 2.1~2.3%로 0.7%포인트나 내렸다. Fed는 양적완화를 계속 축소해 나가면서도 제로금리로 돈을 푸는 경기부양적 통화정책은 1년 이상 더 밀어붙이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돈이 필요한 금융기관들에 제로금리로 돈을 계속 공급할 테니 걱정 말라는 신호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여기서 더 나아가 은행들이 중앙은행에 돈을 예치할 때 금리를 -0.1%로 적용하는 파격적 통화정책을 발표했다. 돈을 풀지 않고 쌓아두면 벌금을 물리겠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ECB의 이번 조치가 다른 선진국들의 통화정책과 비교해 돈을 최대 5배 더 푸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분석한다. 일본 또한 제로금리로 돈을 푸는 무제한 양적완화 조치를 계속 밀어붙이고 있다.

일러스트 강일구

상황은 다시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기존에 풀었던 돈을 회수해 나가려던 ‘통화정책 정상화’의 카드를 접고, 돈을 더 푸는 경쟁에 돌입하는 양상이다. ECB가 앞장서고 Fed와 일본은행이 따라가고 있다. ‘통화전쟁 2라운드’라고 부를 만하다. 세계적인 물가안정세는 이들의 행동을 과감하게 만드는 토양이 되고 있다.

시장은 유동성 잔치에 다시 들떠 있다. 뉴욕 증시의 주가가 20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주요국 주가가 꾸준히 오르고, 채권금리는 크게 하락(채권값 상승)하고 있다. 넘치는 돈은 신흥국으로도 밀려들고 있다. 이라크 내전과 아르헨티나의 디폴트 우려 등 악재도 무시되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나 홀로 천하태평인 게 한국은행이다. 한은은 6월에도 기준금리를 묶어 13개월째 동결 행진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젠 달라지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솔솔 일고 있다. 때마침 최경환 의원을 경제부총리로 하는 2기 경제팀이 출범하면서다. 정권 실세로 통하는 최 부총리 후보자는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 등 손에 잡히는 실용적 정책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한은이 2기 경제팀과 손을 마주쳐 조만간 금리인하 카드를 내놓을 수 있을까. 시장에선 그런 방향에 베팅하는 힘이 커져 채권 실세금리가 앞서 떨어지는 추세다.

한국은행, 금리인하 ‘1석3조’ 기대
이주열 한은 총재는 “방향은 인상”이라던 데서 “이달 지표를 좀 보자”고 최근 한 발 물러섰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은이 7월에 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대 후반으로 낮추면서 금리를 전격 인하할 것이란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의 선택을 받은 이 총재가 새 경제팀의 출범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해석도 가세한다. 명분은 축적돼 있다. 세계적인 통화전쟁 2라운드와 세월호 사고 이후 가라앉은 내수 경기, 1년 반을 넘게 이어지고 있는 1%대 저물가 등.

한은은 무엇보다 글로벌 유동성의 수압(水壓)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웃집들의 우물에 물이 차올라 수압이 높아지는데 우리집 우물만 물이 적어 수압이 낮으면 어떻게 될까. 결국 지하수의 흐름을 따라 이웃집 물이 우리 우물로 밀려오게 마련이다. 만약 이웃집 물이 오염돼 있다면 우리집 물도 삽시간에 전염될 수 있다. 수압을 엇비슷하게 맞춰 물의 이동을 미리 차단해야 하는 이유다. 지금 한국은 실질금리(명목금리-물가상승률)가 2.3% 선으로 해외 주요국보다 1~2%포인트 높다. 게다가 원화 강세로 환차익까지 기대되는 상황이다.

한은이 지금 기준금리를 내려 돈의 수압을 높이면 내수 부양 및 환율 속도 조절, 2기 경제팀과 정책 시너지까지 ‘1석3조’가 기대된다. 0.25%포인트 변동이 너무 커 보인다면 일단 0.1%포인트나 0.05%포인트씩 내려보는 것도 방법이다. 최근 ECB도 기준금리를 조정하면서 0.25%포인트 관행을 깨고 0.1%포인트만 내렸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소리를 들었던 한은이다. 이젠 땅으로 올라와 세상을 넓게 보며 뛰어다닐 때가 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