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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떠나는 나비의 고장 함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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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은 아직 흰 눈을 이고 있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벌써 따뜻한 봄기운이 느껴진다. 장강의 앞물이 뒷물에 밀려 바다로 나가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듯, 동장군의 한기도 봄 햇살에는 한없이 무력하다. 봄의 길목에서 몸속 깊이 전해지는 따스함도 느끼고 몸에 좋은 효능까지 기대한다면 해수찜 마을로 가자. 함평의 바닷가에는 상큼한 봄의 기운이 기다린다.

해동천이라! 봄 햇살 가득 머금은 파란 하늘이 눈부시다. 봄은 멀리 남쪽 바닷가에서 시작된다던 말처럼 남도 땅 함평에는 이미 봄기운이 충만하다. 아직 화사하게 핀 오색의 꽃도, 나폴거리며 날갯짓하는 나비도 없다.

하지만 파릇파릇 올라오는 밀과 보리의 싹이 대지를 녹색으로 채우고, 뺨을 어르며 스쳐가는 싱그러운 바람이 봄이 찾아왔음을 말해준다.

전남 함평은 "함평 천지 늙은 몸이 광주 고향 바라보니 제주 어선 빌어 타고 해남으로 건너올 제…"로 시작하는 '호남가'에 맨 처음 등장한다. '함(咸)'은 충만함을 뜻하고, '평(平)'은 모두가 고르고 화평한 상태를 이른다.

모두가 부족함 없이 함께 어울려서 근심 걱정 없이 평화롭게 사는 고장. 역사 이래 모든 성군이 꿈꾸던 태평성대의 무대인 셈이다.

풍요로운 고장 이름처럼 영광, 무안, 목포 등으로 이어지는 한반도 서남단의 바다가 그러하듯 그들 가운데 들어앉은 함평 역시 산도 아니요, 들도 아닌 풍요로운 갯벌을 품었다. 여기에 "토지가 넉넉하고 산세가 잇달았고 넓은 들이 뻗어 있다"는 조선시대 학자 정인지의 말처럼 농토가 전체 면적의 51%에 달한다. 기름진 남도의 자연 환경에 넉넉한 인심을 가득 담은 함평은 예로부터 풍요로운 땅이었다.

이런 함평에 봄기운처럼 따끈한 장소가 있으니, 바로 해수찜이다. 물 빠진 갯벌을 거닐면 봄바람이 상쾌하기는 하나 아직 찬 기운이 남아 있어 한번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싶어진다.

해수찜은 이럴 때 제격이다. 해수찜은 말 그대로 바닷물을 이용한 목 욕법이다.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그 유래는 알 수 없지만, 1800년대부터 민간요법으로 널리 이용돼 왔다.

처음에는 갯벌에 웅덩이를 파고 썰물 때 고인 바닷물에 뜨겁게 달군 돌을 넣어 찜질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좀더 효과를 높이이면서 편하게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만든 것이 서너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욕탕을 만들어 바닷물을 채우고 소나무 장작으로 달군 유황석을 넣어 물을 데워 찜질을 하는 지금의 방식으로 정착했다.

세상 근심일랑 잠시 묻어두고 물 빠진 갯벌에서 굴이며 조개를 캐다가, 어슴프레 해가 질 녘이면 바닷가 정자에 앉아 서해의 잔잔한 낙조를 바라본다. 그리고 해가 지면 인근 해수찜을 찾아 두세 시간 찜질을 하고 나면 몸도 마음도 개운해진다.

게다가 피부병, 신경통에 효험까지 있으니 일석이조다. 거짓을 조금만 보태면 '앉은뱅이도 병을 고쳐 걸어 나갔다'는 것이 해수찜이다.

FRIDAY : 오주환
기사제공 : (http://myfriday2.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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