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들뜬 보석에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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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울중구남대문노2가를 중심으로 밀집해 있는 보석상의 화려한 진열장은 행인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먹고살기에 다소 여유가 있는 사람이면 한번쯤은 발길을 멈춘다.
전국의 보석상수는 70년대초 1천5백개에서 7∼8년사이 2천5백여개 점포로 늘어났고, 보석거래양도 갑절이상이 증가했다.

<"몇푼이냐"로 체면치레>
대부분이 비밀 「루트」를 통해 들어오는 보석들…. 보석의 으뜸이라는 「다이어먼드」의 국내1일 거래량이 1천 「캐럿」, 순금의 연간거래량은 9t이 넘는 것으로 추정돼 보이지않은 거래까지 합치면 엄청난 돈이 보석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결혼예물로 주고 받거나 제한된 부유층만이 몸에 지녔던 귀금속이 이제는 합금반지정도는 여대생의 「아르바이트」 한달 봉급으로 마련할만큼 일반화 됐고 남자들의 반지낀 모습도 흔해졌다.
잘살게돼서 「먹고 사는것」 이외의 것에 여유가 생겼음은 좋은 일이며 보석을 사는 사람들을 무턱대고 사치족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부당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같은 보석에 대한 수요확대가 실제로 생활이 나아진 만큼의 소득증대분과는 무관하게 팽창일로에 있다는 사실이 문제다.
언제부터인지 신부에게 주는 결혼예물이 꼭 「다이어」반지라야 신랑집안의 체통이 서게 됐고 신부측도 신랑에게 고급 시계에다 웬만하면 「다이어」반지까지 곁들이는 것이 예사가 됐다. 순금이냐「사파이어」냐는 관심밖이고 『몇푼짜리 「다이어」냐』가 사돈간의 체면치례 여부를 결정짓는다.

<투기노린 도리꾼 생겨>
지난해 가을에 결혼, 서울서대문구갈현동에 1백만원짜리 단간방 전세로 신방을 꾸민 L모씨 신혼부부의 경우-. 신랑은 신부에게 싯가 93만원의 5푼짜리 「다이어」반지를 포함, 1백50만원어치 예물을 해줬다. 신부도 30만원짜리 「롤렉스」시계와 1푼짜리「다이어」반지등을 신랑에게 해주는 바람에 결국 이들은 전세비보다 비싼 보석을 몸에 지니고 산다.
남편이 중동에서 꼬박꼬박 송금해준 돈에다 빛을 보태 25평짜리 「아파트」에서 45평 「아파트」로 이사한 주부 P씨는 허전한 거실에 비치할 싯가 50만원 안팎의 칠보「코피·세트」를 사러나섰다.
이웃집 거실에 놓여있는 아름다운 색상의 칠보그릇이 P씨를 속상하게한 것이다. 규격화된「아파트」의 평소에 실내장식이나 가재도구까지 규격화하고 있는셈이다.
보석상을 하는 Y씨의 말을 빌면 최근들어「다이어먼드」나 중국산 쑥비취등 1백만원이상의 값비싼 고급품을 대량으로 사가는 손님들이 부쩍 늘어났다.
「이들은 대개가 보석의 진가도 식별할줄도 모릅니다. 그저 귀하고 비싼 물건이라면 데꺽 사가는 부류들이지요』 (D백화점 L보석상의 말).
신진구매층으로 등장한 이들은 주로 벼락부자가 된 남편의 아낙네들이거나 부동산투기에 재미를 본 복부인들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투기바람까지 불어닥쳐 보석상을 돌며 고가품만을 훑어가는 보석도리꾼까지 생겨났다. 최고가품인 「다이어먼드」값이 6개월사이에 5푼이하가 40%, 6푼∼l「캐럿」이 20%이상 올랐으나 비싼물건일수륵 불티가 나고 3백50만원을 훗가하는 1 「캐럿」 이상은 아예 값이 없다.
보석용「다이어먼드」의 세계연간 생산양은 1천3백만 「캐럿」. 이중 국내로 흘러들어오는 「다이어먼드」의 대부분이 품질분류 7등급중에 6등품에 해당하는 저질품이다. 게다가 보석상을 통한 거래량 못지 않은 비밀 「루트」를 통한 「안방끼리의 암거래』 경우 30%이상이 흠이 많은 저질이거나 가짜라는 것이 한 보적전문가의 말이다.
금값도 국제적인 오름세(지난해 48%상승)와 가속되는 환물심리를 타고 『너도나도』식의 금사재기-. 1년사이 1돈중에 1만1천원 하던 금값이 2만2천윈까지 뛰었어도 없어서 못사는 실정이다.『순금 1관을 팔라』 는 한 손님의 주문을 받은 어떤 보석상은 전에 없던 일이라고 어처구니없어 하면서 자유당시절의 황금열쇠「붐」을 회상케 한다고 말했다.
이 상인은 요즈음 자금난에 시달리던 모기업사장이 사뒀던 금을 팔아 전사원의 밀린 봉급을 해결한 일도 있다고 귀뜸해주면서 『6·25동란때 금의 즉각적인 환물성을 경험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난히 금을 선호한다』 고 설명했다.

<늦게빛본 국산 자수정>
소비자들의 보석을 고르는 자세에도 문제가 있다. 세계적으로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는 국산자수정이나 왕은 안중에도 없고 무턱대고 값비싼「루비」나「에머럴드」를 갖고 싶어한다(전문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거래되고 있는「루비」 「에머럴드」등은 90%이상이 착색한 저급품이다).
10년전 국내에서 덩어리로 팔릴 정도로 도외시당하던 국산자수정이 일본으로 헐값에 거의 수출된후 외국시장에서 그 진가를 인정받게되자 뒤늦게 국내수요도 늘어났으나 요즈음은 원석이 부족해 도리어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보석전문가 이선호씨는 최근 사치나 투기적인 이상구매현상이 이제 겨우 전문업으로서 정착단계에 있는 보석업계에 방향감각을 잃게하고 있다며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젊은 여성층을 중심으로 순금보다는 세공에 편리한 14금등을 찾는등 개성있는「디자인」과 미적 감각을 위주로한 선택경향이 성숙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결혼예물도 과중한 부담의「다이먼드」대신 자기가 출생한 달의 탄생석에 결혼날짜를 새겨넣는등 뜻있는 기념물로 이해돼야 한다고 덧붙였다.<이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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