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리"자랑할 기회됐으면…|미국 연주길 떠나는 국향에 바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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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79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우리한국은 우리들의 말(언어)을 초월하여 미술과 음악으로 미국국민에 대한 광범하고도 적극적인 친선공작을 벌이게 된 점에 대하여 우리는 일부 예술계나, 학계인사들 뿐만 아니라 국민적인 관심과 성원을 보내 마땅할 것이다.
그러한 행사는 바로 오는 5월1일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미국 7개 도시에서 국보 또는 국보급의 우리의 고유한 문화유산 근3백점으로 「한국미술 5천년전」을 개최케 되는 것과 바로 이에 앞서 오는 14일 우리 국립교향악단이 「로스앤젤레스」를 비롯하여 20여개의 미국도시를 방문, 연주케 되는 일이다.
그동안 약 2년 동안 마치 무슨 악덕의 나라처럼 미국의 신문과 국회가 한국을 비방해오던 「스캔들」사건이니, 인권문제니 하는 논란도 대개 끝맺고 미국 정부당국도 작년 연말부터 한국과의 새로운, 더 긴밀한 이해와 친선을 외치고 있는 때라 우리의 미술·음악의 친선사절의 뜻은 결코 적지 않다 할 것이다.
그런데 그중, 우리 국립교향악단의 미국연주여행에는 적잖은 문제들을 악단자신이 품고 있다는 점을 그들의 출발 전에 말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첫째는 국립교향악단의 미국방문은 한국미술 5천년전의 미국방문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기왕 우리의 고유한 민족의 「얼」이 이 담긴 값진 문학유산인 석기시대 이래의 미술품의 학문적 체계를 갖춘 고고(고고) 미술품의 대규모 전시를 전미국학계와 국민앞에 베푼다면 음악도 우리의 고유한 기악의 독주, 합주 또 노래와 무용 등의 다양하고도 음악적으로 성숙한 전통음악의 연주를 보여줌으로써 미술 5천년전시와 앞뒤를 맞춰나가는 보람을 가지게 했으면 좋지 않겠느냐 하는 점을 당연히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국립교향악단은 연주곡목이 전혀 「유럽」음악을 대표하는 근세, 또는 현대의 거장의 대곡들을 가지고 저 땅에서, 「나」를 선보이고자 한다는 점에 대단한 어려움과 조심스러운 점이 있는 것이다(연주 곡목중에는 우리나라 양악 작곡가의 3곡목이 들어있기는 하다)
하기는 우리 전통음악 연주는 비교적 소수인원을 상대로 하는 「살롱」음악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큰 도시의 대중을 상대로 하는 연주장소에서는 적합치 못하다는 논의도 무시될 수 없다. 그러나 내 기억으로는 비록 「텔리비전」방영이기는 했으나 재작년 여름엔가, 국립극장에서 박동진·김소희씨의 판소리가 국립교향악단의 협주로 연주된바 있다. 그때 대체로는 성공적이 아닌가 싶었다.
뒤에 박동진씨에게 그 성과에 관하여 물었더니 『좀 더 연습을 할 수 있었으면요…』하는 대답이었다. 우리 전통음악은 전통음악의 재래의 형식을 그대로 보존하는 한편, 우리의 고유한 것을 현대적 세계무대에 올려놓는 길을 생각하여야 한다면 「유럽」음악의 악기 그와 표현양식과의 기교적인 융합을 도모치 않아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미 판소리의 교향악과의 험구가 시험되었다는 것은 우리 전통음악의 현대적 발전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우리 국립교향악단이 미국을 방문한다면 무엇으로써 「나」라는 특색을 보여줄 수 있겠느냐 하는 점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문공부당국자에게 위의 두 분의 판소리를 연주의 중요곡목으로 채택키를 권해왔다.
추후에 듣고 보니 거기에는 협주곡의 편곡상, 또 독창자의 양악곡 이해에 관한 기본적 난점이 없지 않다는 점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양악부문에서 우리 국악을 외면하기 보다는 적극 받아들일 노력과 용기를 보일 여지는 있지 않았느냐 하는 점은 지금도 심히 아쉽게 생각된다.
그동안 국립교향악단은 미국연주여행을 앞두고 단원들의 악기도 더 좋은 것으로 바꾸게 하고 연습도 대단했다니 그 성과에 새로운 기대를 어느 정도로 걸 수도 있을 것이다. 독주곡목에는 「바이얼린」에 「파가니니」「콘체르토」, 「피아노」에 「차이코프스키」의 「콘체르토」등의 대곡으로 세계악단에 도전코자 하는 열의는 잘 알 수 있다.
강동석·백건우의 연주가 이미 저 땅에 어느 정도로 알려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교향악단 전원의 「앙상블」과 악곡의 이해와 표현의 섬세하고 심오한 점에 들어가서 저 땅의 청중이나 비평가들의 귀에 익은 높은 감상수준과 어느 정도로 겨룰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은 자못 염려스럽고, 조심스러운바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교향악단 연주에서 평소 지적되지 않을 수 없는 점은 「앙상블」의 부족이었다. 관악기에도 어려움이 있겠지만 관현악의 주역이 되고 있는 현악부문의 합주가 항상 더 조심스러웠다.
이런 경우는 악단의 악장이자 지휘자의 무게와 단원 각자의 성실성이 문제될 것이다. 악곡의 해석과 표현의 섬세하고 자재로운 점은 전 악단원의 「앙상블」의 정도에 달려있는 것이다. 대체로 「튜닝」을 제대로 않는 불쾌한 경우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번 연주여행에는 그런 종류의 불만은 충분히 극복되었으리라 믿는다.
지휘에는 홍연택씨가 많이 수고할 것이나 미국 「아틀랜타」교향악단의 지휘자로 작년에 서울에도 왔던 곽승씨가 교대로 지휘를 맡게 된다는 것은 이번 연주여행에 많은 힘을 보탤 것이다. 전악단원들이 어느 때보다도 겸손한 태도로 연주에 임해야 할 것을 부탁하고싶다.
홍종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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