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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인지지배로주변국의 공산위협증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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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해설>「캄보디아」친중공정권의 붕괴는 공산주의 세계의 세력다툼, 특히 중·소간의대리전의결과라는점에서새로운 의미를 지닌다.「폴·포트」정권을 무너뜨린 「캄푸체아」구국민족통일전선은「베트남」의 전면적인 지원을 받고「베트남」군과 함께 총공세를 개시한지한달도 채못되어「프놈펜」을 함락시켰다. 이런 상황은「폴·포트」정권이 무자비 한 양민대량학살로 민심을 잃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소련의 물량지원을 받은「베트남」군의 치밀하고 본격적인「캄보디아」침공때문이었다는것은 의심할 여지가없다.
따라서 지난3년간 끌어온 인지공산권 내부의 싸움이 이것으로 끝났다기보다는 이제 전쟁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보는것이 타당할 것같다.「폴·포트」정권은 중공의 강력한지원을 받고있다. 그뿐아니라「폴·포트」정권이 비록 민심을잃었다 해도 전통적으로「베트남」인과 적대적인「캄보디아」인들의 동정과 지지를 받을수도 있고, 또 계속 「게릴라」 전으로「캄푸체아」구국민족통일전선을 쓰러뜨릴 결의를 다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공은 특히「폴·포트」정권의 붕괴에 즈음해서「베트남」과의 국경지대로 대규모의 부대를 새로 투입하여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중공은 소련과 대향하는 입장에서 친소「베트남」이 인지를 지배하는 사태가 온다면 그것은 자국의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판단에서「베트남」의「캄보디아」침공이 본격화한 지난12월 대만대안의 건군구의 병력을「베트남」국경지대로 옮긴것 같다고 미국의「우드코크」북경주재연락사무소장이 최근 분석했다.
그러나 중공이 선뜻 이전쟁에 개입할 수 없었던 원인은 첫째 소련의군사적 개입이 없는 싯점에서 대월전쟁을 개시한다면 북방에서 소련의도발을 받을 위험성을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둘째 그보다도 더 중요한 요인은「베트남」의본격화된「캄보디아」침공시기가 중공의 대미수교와 일치했다는 것이다.
중공은 대만문제 때문에미국안의 여론을 자극할지도 모를「베트남」과의전쟁을 자제하지않을수없었던 것같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것은 이번 사태가 미·중공수교에 따른 광범한국제질서의 개편과정의 두드러진 한 현상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70년에 미국과 중공이화해분위기로 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자 소련과인도가 이에 대항해서소·인우호조약을 체결해서 밀착했다. 인도는 이런 여세를 몰아「파키스탄」과제3차전을 일으켜 동「파키스탄」의 독립을 지원해서「방글라데시」정부를세우게 했다.
이때도 중공은「파키스탄」을 강력히 지원하는입장이었고 인도와는 불화관계에 있었지만중공은「파키스탄」을 도울수가 없었다.
따라서 소련과「베트남」은 미·중공수교라는 새로운 사태를 틈타 지난11월에 소·월우호조약을체결한데 이어 전격적으로「힘의 공백」상태인「캄보디아」를 유린할 계획을 세운것으로 보인다.이런 측면을 뒷받침하는 것은「캄푸체아」구국민족연합전선이 지난12월3일에 급조됐고「베트남」과 소련이 그 임시정부를 강력히 지지했다는 점이다. 특히 연합전선측의군사규모가 기껏해야 수천명에서 2만명을넘지못한난민세력이었는데도 한달만에 중앙정부군을완전히 패퇴시켰다는것은그런 점을 잘 시사한다.
「폴·포트」정권의 붕괴는 우선 1930년대이래 인지반도를「베트남」이 지배하는 연방하에 묶어두려는「베트남」의 숙원을 푼 셈이 됐지만 주변의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에당장 미치는 영향은 클 것으로 보여앞으로 이들 국가의 대응이 주목된다.
이번 사태로「베트남」의 지배하에 들어간 인지공산권이「아세안」지역의 공산「게릴라」들을 크게 자극하고 배후를 강력히 조종할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에 태국등은 이미 전군에 비상경계령을내리고 대비하고 있는 형편이다.
또 이번 사태로「캄보디아」를 강력히 지원해온 북괴의 태도가 앞으로 어떻게 나타날지도주목되는 일중의 하나라고하겠다.【이수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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