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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의 의식구조"|"수입보다 보람 때문에 예술에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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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한 폭에 몇 백만원씩 홋가하는 그림이 손쉽게 팔려나가고 연극공연에는 관객이 몰려들어 대성황을 이룬다. 몇몇 작가들은 원고료·인세 수입만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누린다. 그래서 「예술가」하면 얼른「가난」을 연상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들한다. 가난과 병고 속에서 숨져갔던 김유정 이상 나혜석 이중섭의 이야기는 이미 옛이야기가 돼버린 것일까.
그러나 겉으로 풍요해 보이는 우리나라 예술계의 내부로 접근해 들어가 보면 아직도 예술활동이 최소한의 생계수단조차 되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된다.
전체 예술인의 82%가 하루일과 중 평균 3시간 이상 8,9시간까지 예술을 위해 할애하고 있으나 그 예술활동으로서 얻어지는 월평균 수입은 44%가 10만원 안쪽이다.
이 같은 사실은 79년 새해를 맞아 본사가 문학·미술·연극·음악·영화 등 예술계 각 분야에 걸쳐 무작위 추출한 전국 5백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로 밝혀졌다.
80연대의 문턱에서 우리나라 예술인들의 생활과 의식은 어떠하며 우리나라 문학예술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해보기 위해 실시한 이 조사에 따르면 또한 전체의 26% 이상이,예술활동 이외의 다른 직업을 갖고 있지 않으며, 예술활동에 의한 수입이 보잘것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인들 자신이나 그 가족들은 예술활동에 크게 보람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본사가 발송한 5백장의 설문지중 회수된 3백64장을 대상으로 집계한 것인데 응답한 예술인을 분야별로 나누어 보면 문학이 1백70명, 미술이 78명, 연극이 62명, 음악·무용이 33명, 영화·연예가 21명이었다.

<활동기간과 겸업>응답자의 예술 활동 기간은 10∼20년이 1백38명(38%)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6∼10년의 82명(23%), 20∼30년의 74명(20%), 5년 이내의 35명(10%), 30년 이상의 34명(9%)의 순서였다.
예술인들의 직업은 대학교수 및 초·중·고등학교 교사 등 교직이 압도적. 대학교수가 1백명(28%),초·중·고교사가 41명(11%)으로 이를 합하면 교직 예술인이 전체의 39%에 달한다. 그밖에 신문·방송·잡지·출판에 종사하는 예술인이 59명(16%)이었고 기업체 직원 26명(7%), 학원강사 및 개인교수 15명(4%), 그리고 공무원·군인·성직자·상업 등 기타가 27명(7%)이었다.
그러나 다른 직업을 갖지 않고 예술활동에만 전념하는 예술인이 96명(26%)으로 대학교수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직업별 분포를 분야별로 살펴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난다. 다른 직업을 갖지 않은 예술인들은 연극에 가장 많아 63%에 달하며 미술은 30%, 영화·연예가 19%, 문학이 15%, 음악·무용이 12%의 순서였다.
직업을 갖고 있는 예술인들(2백68명)은 직업 때문에 예술활동에 위축을 느끼는 듯. 1백19명(44%)이『지장이 많다』, 87명(33%)이『다소지장이 있다』고 응답했으며『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44명(16%),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18명(7%)이었다. 또한 『예술활동에 의한 수입이 충분하면 다른 직업을 포기하겠는가』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1백90명(71%)이 『그만두겠다』고 응답했으며 48명(18%)이『그만두지 않겠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수입과 예술관>10만원 미만이라면 최저생활비도 못되는 액수지만 예술활동에 의한 월평균 수입은 44%(1백60명)가 『10만원도 못된다』고 응답했으며 그 가운데 장당수는『거의 없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밖에 10만∼20만원이 71명(20%), 30만∼50만원이 55명(15%), 20만∼30만원이 53명(15%), 50만원 이상이 25명(7%)인데 이를 다시 분야별로 나누어 보면 문학·연극에「저소득층」이 몰려있는 반면 미술·음악에는 30만원 이상의 수입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통계가 나왔다. 특히 미술분야에는 77%가 30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응답했다.
월평균 수입중 예술활동에 의한 수입이 차지하는 비율은『10%이내』 라고 응답한 사람이 1백30명(36%)으로 가장 많았고 대부분 고 소득자로 보이는 69명(20%)은『1백%』라고 응답했으며 그 중간은 고른 분포를 보였다. 말하자면 예술인 가운데 80%이상이 생활비의 일부 혹은 전부를 다른 방법에 의해 얻고 있는 셈이다. 『예술활동에 의한 수입이 만족한가』하는 질문에는 2백54명(70%)이『불만』이라고 응답, 『그저 그렇다』는 89명(25%) 이었고 21명(6%) 만이 『만족하다』는 답변이었다.
예술활동에 의한 수입이 이처럼 보잘것없지만 예술활동을 위해 할애하는 시간은 비교적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하루 평균 3∼4시간을 할애한다는 사람이 1백31명(40%) 으로 가장 많았고『6시간이상』이 98명(27%), 『1∼2시간』이 79명(22%), 『5∼6시간』이 56명(15%) 의 순서였다.
예술을 위해 시간은 많이 쓰고 수입은 적지만, 3백11명(85%) 은 『예술활동에 긍지와 보람을 느낀다』고 응답했으며 『느끼지 못한다』는 사람은 41명(11%) 뿐이었다. 또한 예술인의 가족들도 그들의 예술활동에 대해 크게 보람을 느끼고 있으며 (2백20명)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치고 있는 예술인은 31명에 불과했다.
그런가 하면『자녀들에게 같은 분야의 예술을 지망하도록 권장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못하게 하겠다』는 사람이 51명(14%)인 반면 『제 뜻에 맡기겠다』가 2백67명(73%), 『권하겠다』가 46명(13%) 이었다.

<우리의 예술수준>예술인들 자신이 생각하는 우리나라 예술의 수준은 어떤가. 우선 국제적인 수준과 비교했을 때 『국제적인 수준에 도달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부정적인 응답이 1백64명(45%)으로 가장 많았으나『곧 국제적인 수준에 도달할 것이다』가 1백17명(32%), 『국제적 수준에 뒤지지 않는다』가 78명(21%)으로 나타나 긍정과 부정이 비슷한 숫자였다. 국제적인 수준에 뒤져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예술인들의 정신적 자세의 결여』(1백98명), 『정책적 지원, 또는 국민적 인식부족』(1백98명), 『선진국과의 정치적·경제적 격차』(1백32명) 등의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반면 지난날과 비교한 발전도에 대해서는『비교적 발전해 온 편이다』가 1백54명(42%),『많이 발전해왔다』가 1백3명(28%)으로 긍정적 응답이 70%였으며 『별로 발전한 것이 없다』고 응답한 사람은 97명(27%) 이었다.
한편 예술인들의 수효에 대해서는『많다』는 응답이 1백68명(46%)으로 가장 많았고 『적다』가 1백4명(29%), 『적당하다』가 60명(17%)으로 나타났는데 분야별로는 차이가 있어 문학에서는 87%, 영화·연예에서는 57%로『많다』가 압도적인 반면 미술·연극·음악에서는 46%·48%·58%로 『적다』는 응답이 많았다.
이와 관련된 것이지만「데뷔」관문에 대해서도『넓다』는 응답이 1백64명(45%)으로 가장 많았고 『좁다』는 응답이 1백명(28%), 『적당하다』는 응답이 86명(24%) 이었으며 분야별로도 수효에 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문학(67%), 영화·연예(38%)가 『넓다』는 쪽이 많은 반면 미술(45%) 연극(42%) 음악(73%)은 『좁다』는 쪽이 많았다.
그러나 『예술인의 수효나「데뷔」의 관문이 예술의 수준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에 대해서는『관계없다』는 응답이 1백58명(43%)으로 가장 많았고 『숫자가 많으면 수준이 높아진다』는 응답이 1백7명(29%), 『낮아진다』는 응답이 80명(22%)으로 나타났다.

<문예진흥정책 견해>제1차 문예중흥5개년계획이 78년으로 끝났고 79년부터는 제2차 5개년계획에 들어가는 이 시점에서 당국의 문예진흥정책에 대한 예술인들의 반응은 어떤가. 『당국의 예술에 대한 정책지원』에 대한 예술인들의 반응은 비교적 불만스러운 것으로 나타나 『더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한다』는 응답이 2백69명(74%)으로 압도적이었고 『예술의 독자성을 위해 지원을 않는 것이 좋다』는 응답이 64명(18%), 『현 단계로서 바람직하다』는 응답은 17명뿐(5%) 이었다.
그러나 문예진흥정책의 예술발전 기여도에 대해서는『다소 도움이 되었다』가 1백84명(58%), 『크게 기여했다』가 14명(4%)으로 긍정적인 반응이 절반을 웃돌았으며『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부정적 응답은 1백51명(42%)이었다. 이 항목도 분야별로 반응이 달라 문학(63%) 연극(50%) 영화·연예(53%) 에서는 긍정적 응답이 많은 반면 미술(50%) 음악(55%) 에서는 부정적 반응이 많았다.
한편 문예진흥정책이 예술발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다소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이 1백83명(50%)으로 가장 많았고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응답이 98명(27%), 『절대적이다』는 응답이 71명(20%)으로 나타나 대다수 예술인들이 예술발전을 위해 좀더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당국의 정책지원을 기대했다.
【정규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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