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계 "정치권 인사개입 이젠 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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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정치권력의 부당한 인사 개입을 막자는 움직임이 방송계에서 일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가 소유하고 있거나 공기업이 대주주로 있는 방송사에서, 정부 입맛에 맞는 '낙하산 인사'를 거부하겠다는 반발이 드세다.

물론 과거에 이런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고, 사장 선임에 대해 노조가 간여하는 데 대해서는 이견도 있다. 하지만 참여정부 들어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진 데 비례해 "방송사 사장직이 정권의 전리품이 아니다"는 목청 또한 커졌다.

각 방송사 노조와 시민단체들은 "참여정부가 방송을 통제하려는 과거의 악습에서 벗어나, 방송의 독립성을 지켜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근 사장 퇴임으로까지 진행된 KBS사태는 이런 의미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권력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인사를 사장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노조와 시민단체들의 뜻이 노무현 대통령의 인사개입 시인과 함께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노조 집행부는 청와대 간담회에서 대통령과 주변인사들이 불쾌해할 정도로 청와대 측을 밀어붙였다. 모두 전례 없는 일이다.

지난 2일 서동구(徐東九) KBS사장이 사임의사를 밝혔을 때 또 하나의 팩스가 언론사에 도착했다. 뉴스 전문 채널 YTN 노조가 낸 '이제는 사심 없이 사장감을 검증해 보자'란 제목의 성명서였다.

그동안 사장 내정설이 돌던 표철수(表哲洙)전 경인방송 전무가 "사원들이 반대한다면 가지 않겠다"며 후보 사퇴를 한 것과 관련한 성명이었다.

우장균 YTN 노조위원장은 "인물의 능력과 관계없이 현 정치권과 연관돼 있는 인물이라고 판단돼 거부운동을 벌였다"며 "사원들로선 지난 10년 동안 가장 큰 힘을 발휘한 셈"이라고 자평했다.

방송사는 아니지만 방송계 정책을 총괄하는 방송위원회 내부 분위기 역시 예전과 다르다. 방송위원회 노조는 지난 1일 발빠르게 성명서를 냈다. "지금 정치권에서 두명의 학자 출신 방송위원장.부위원장을 추진 중인데 이에 반대한다"는 내용이었다.

아직 새 방송위원들이 선임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정설'에 대한 반대성명을 낸 것이다. 김도환 노조위원장은 "누구든 부당하게 정치권의 힘을 업고 방송위원장이 될 경우 KBS와 마찬가지로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EBS도 마찬가지다. 5월 8일 김학천 사장의 임기가 끝나기 때문이다. 노조와 시민단체들은 9명의 사장 추천위원 중 방송위원 6명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을 공개적인 방법으로 선임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방송사는 아니지만 KBS.MBC가 지분의 75%를 가지고 있는 연합뉴스 역시 새 사장 선임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강남준 교수는 "한국적 현실에서 인사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며 "사장 선임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검증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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