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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품선거는 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당락의 심판만을 남기고 있는 10대 총선의 최대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돈인 것 같다.
돈을 쓸 수 있었는가 없었는가, 얼마나 썼는가에 따라 대세가 결정됐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이 많다.
과거 선거 말썽이 주로 관권개입과 투·개표 부정이었으나 이번 경우엔 관의 개입엔 말썽이 없으나 웬만한 후보라면 돈 안쓴 사람이 없어 서로간에는 시비를 걸기도 어려운 지경이 됐다.
이번에 나선 후보 4백 72명중 재대로 권에도 들지 못한 후보는 제쳐놓고라도 3백명 정도가 접전을 벌였다고 상정할 때 한 후보가 평균 1억원을 썼다면 3백억원, 2억원을 썼다면 6백억원의 엄청난 돈이 쏟아졌다는 계산이 된다.
왜 이런 선거가 돼버렸을까.
이번 선거처럼 긴장감 없는 선거도 없었다는 말도 많다. 긴장감 없는 선거에 왜 그처럼 돈이 많이 들어갔는가. 선거 결과에 따라 정권이 오고 가는 것도 아니요, 유정회 몫 때문에 여·야세의 역전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또 누가 당선되든 낙선되든 정치구조나 본질에 큰 영향을 주지도 못한다.
고작 여·야 각 당의 의석 분포가 조금 달라지고 몇몇 사람이 새로 들어가고 물러가는 결과가 있을 뿐이다.
결국 선거에 관한 유권자의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런 상황에서 정치소신이나 공약의 제시라든가 정치에 대한 국민 관심을 불러일으킬 「정공법」보다는 얄팍한 지역사업 공약이나 선심공세로 유권자의 환심을 사고 지역감정에 호소하는 저질 득표전이 판을 치게 된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누가 되든 상관없다」는 관념에서 「기왕이면 우리 고장 인물을 뽑자」는 지역감정이 나왔고 「기왕이면 돈 얻어 쓴 후보를 찍자」는 금력선거가 나오게 된 것이다.
여야가 공표한 화려한 선거 공약은 간데 없고 『당선되면 서울에 살지 않고 지역구에 살겠다』느니 읍은 시로, 시는 직할시로 승격시키겠다는 따위의 황당하고 저차원의 「이슈」 가 제기되고, 세 불리한 경우 당론에 아랑곳없이 「부가세를 개선하겠다」는 등의 개인 「플레이」도 쏟아져 나왔다.
이처럼 선거 운동이 여야당 소속 후보들까지도 철저히 개인 「플레이」로 이뤄졌고 인물됨됨이나 내세우는 주장보다는 지연·학연·혈연·조직을 통한 선심 난발로 표가 오고 간 양상이었다. 게다가 상대편의 감표를 노린 흑색선전이 난무해 첩보·공작전까지 벌어졌다.
선거전의 자금 살포는 부동산·골동품 투기에서 볼 수 있듯 재력이 남아도는 졸부 등장에도 원인이 있을지 모른다.
관권 개입이 거의 없었다는 얘기는 탈법의 방관을 초래했다는 역설도 나왔다.
자금 살포와 같은 크나큰 탈법 운동이 거의 단속의 눈을 벗어난 것은 당국이 방관 쪽으로 흘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한다. 물론 까다로운 선거법에 따라 단속을 하려들면 안 걸리는 후보자가 없을 만큼 탈법사례가 많을 것이고 무더기 입건·무더기 구속으로 탈법방지에 나설 경우 관권 개입의 상황에 빠지게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탈법이 판을 친 현실을 방치한 채 관권 불개입만 내세울 수도 없는 일일 것 같다.
탈법 운동은 선거법 자체에도 큰 원인이 있다.
선거법이 허용한 선거운동은 선거공보·합동연설·벽보·현수막밖에 없고 선거구내의 읍·면·동의 수만큼 「선거 사무원」을 둘 수 있게 했지만 이들을 득표 운동에 활용할 방법도 없다. 법대로 선거 운동을 하자면 벽보·현수막이나 붙여놓고 후보자는 합동 연설에 참가하는 외에는 집에서 낮잠을 자는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비현실적인 제약은 후보나 운동원을 알게 모르게 범법자로 만드는 결과가 된다.
따라서 이번 선거 과정에서는 선거운동의 현실화가 참고되고 1구 2인제의 선거제도 개선론도 크게 대두됐다.
또 자금살포를 못하게 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고 과열억제를 위한 무소속 출마요건 강화론도 여당 쪽에서 나왔다.
여야간 「형님 먼저 아우 먼저」식이란 비판을 받는 현행 1구 2인제를 1구 1인의 소선거구제로 바꾸자는 야당 측 주장에 대해서는 소선거구제에서는 더 돈이 많이 드는 선거, 더 과열되는 선거가 불가피하다는 반론이 많고 무소속 출마를 어렵게 하자는 여당 주장은 『가뜩이나 무소속이 불리한데 「페어·플레이」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냐』는 비판론에 봉착해 실현이 어려울 것 같다.
1구 2인제에 대해서는 여야가 1구 2명씩 공천하든가, 과열 요인을 배제할 장치를 갖춘 소선거구제를 채택하든가 개선이 있어야한다는 의견이 많다.
가장 필요성이 강조되는 돈 적게 드는 선거를 위해서는 △도 단위의 대선거구제를 하든가 △당국이 불법자금 살포는 무리가 있더라도 모조리 단속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으나 이 모든 문제는 결국 10대 국회의 과제일수 밖에 없다.
【송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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