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꿈나무] 마음의 상처는 서로 나눠야 아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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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내 이마 위의 흉터
조임홍 지음, 최정인 그림
창비, 232쪽, 7000원

"어른들은 보물창고를 이미 열어 본 사람들이고, 너희들은 이제 그 보물창고의 열쇠를 발견해서 찾아야 하는 사람들이지." "삶이란 달려만 가는 것이 아니라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겨울이 오는 자연의 순환처럼 우리네 삶도 행복과 고난이 반복적으로 교차해 간다는 것을 이해할 수만 있다면…"

아무리 긴 동화라도 메시지로 압축하면 한 줌 남짓할 뿐이다. 저자가 딸을 잃은 아픈 체험을 바탕으로 쓴 이 책에서도 결국 인용문 같은 한 두 문장만 건질 지 모른다. 문제는 평범해 보이는 '결론'들이 감동적으로 와닿는 과정에 있다. 결말에 이르는 길 위에서 만나게 되는 에피소드와 인물들이 결국 이야기의 속살을 채워 읽는 맛을 더할 것이다.

신간은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출발한다. 짜릿하게 만드는 사건은 없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이들의 평범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감동의 수위가 높아진다. 평범한 에피소드들은 또래 아이들의 신고식인 담력 테스트, 스타크래프트 게임 경쟁, 칼춤과 태권도 시범으로 꾸며지는 동네 잔치, 이성에 대한 풋풋한 호기심 같은 것들이다.

초등학교 5학년생 태민이는 오른쪽 이마에 4㎝ 가량의 흉터가 있다. 하지만 정작 태민이의 흉터는 가슴에 있다. 아버지가 4년 전 돌아가신 것이다. 엄마는 웃음을 잃은 지 오래고 누나 태희는 명랑한 척 하느라 수다스러워졌다.

태민이가 이사가서 새로 사귄 친구들의 관심사는 사시사철 검은 오버에 배낭, 까만 벙거지를 쓰고 다니는 폐쇄적인 '오바쟁이'와 그가 기르는 무시무시한 애꾸눈 셰퍼드의 정체다.

같이 사는 고모할머니는 "호기심으로 누군가 건드리면 그 사람의 영혼이 다칠 수 있다"며 말린다. 친구들도 금세 흥미를 잃고 만다. 하지만 태민이는 끈질지게 언덕 너머 오바쟁이 집을 찾아간 결과 애꾸눈 개와 친해지고, 오바쟁이도 마음의 문을 열고 집안 출입을 허락한다.

오바쟁이는 사고로 마음의 상처를 입고 세상을 등진 사람이었다. 셰퍼드 '바다'는 오바쟁이 덕에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충견이 됐다. 신간은 결국 상처입은 자들의 소통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태민이는 그들의 그런 상처를 들여다 본 후 가슴 속 꽁꽁 묻어놨던 아빠를 떠나 보낸다. 빈자리에 초대되는 건 오바쟁이다. 노쇠한 '바다'가 끝내 죽자 태민이와 오바쟁이가 서럽게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가슴을 후벼판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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