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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모자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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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데·시카」가 감독·주연한 「이탈리아」영화에 『움베르토·D』라는 게 있었다. l차 대전 직후의 가난한 「이탈리아」사회의 슬픈 단층을 보여준 명화다.
이 영화에서는 첫 장면부터 두개의 행렬이 나온다. 하나는 제대군인들이 연금 지급을 받기 위해 늘어선 줄이다. 또 하나는 매혈자 들의 행렬이다.
두 행렬은 좀처럼 줄어들지가 않는다. 피를 팔아 끼니를 이어가려던 주인공은 맥없이 길가에 주저앉는다.
매혈은 가난한 나라에서 성행한다. 「홍콩」·「멕시코」…. 피 값도 엄청나게 싸다. 그래서 이런 곳에서 사들인 피를 미국·「캐나다」 등에서 비싸게 팔아먹는 밀수꾼들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마다 60만명의 피가 필요하다. 한명으로 뽑는 피한병은 거의 「사이다」병 한병꼴의 양이다. 그러니까 2억3천만cc정도, 「사이다」병으로 50만병 이상이 필요한 것이다.
이중에서 약 70% 이상을 매혈로 메우고 있다. 그만큼 나라가 가난해서가 아니다.
지난 76년에 한국의 매혈값은 미국에 비해 5분의1도 안되었다.
그래도 팔겠다는 직업적 매혈자들의 피 중에서 깨끗한 것은 절반밖에 안된다.
지난해에 혈액원에서 조사한 바로는 우리나라의 매혈의 오염도는 미국의 47배, 일본의 2배나 된다.
가난한 직업적 공혈자들의 피가 깨끗할 리가 없다. 따라서 매혈자가 줄어드는 것은 그만큼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그 대신 헌혈자가 늘어나야 했다. 도시 「판투스」가 1936년에 처음으로 「혈액 은행」을 만든 것도 헌혈자를 상대한 것이었다.
구미 각국에서는 헌혈이 95%가 넘는다. 우리나라에서는 0.3%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 지난달엔 재고량 85%나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하루 평균, 1천4백명이었던 것이 2백40명으로 준 것이다.
이래서 절대량의 절반 이상이 모자란다고 병원마다 야단이다. 새삼 여기저기서 헌혈 「캠페인」이 일어나고 있다.
피의 재고량이 뚝 떨어진 데에는 헌혈된 귀중한 피를 빼돌려 장사를 한 「혈액원 부정」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 탓이었다.
지금까지 피의 수급 과정에는 이상도 많았다. 성가시다고 혈액원에서 애써 찾아온 헌혈자를 따돌려 말썽을 빚은 일이 있는가 하면, 싸게 산 헌혈을 병원에서 비싸게 팔아 부당 이득을 꾀한적도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헌혈자가 모자랐던 것이다. 해마다 헌혈자는 8만명 밖에 되지 않았다.
그 중의 70% 이상이 고교생들이었다. 31세 이상은 2.4%에 불과했다.
『남자가 40이 넘으면 모두 흉측스러워진다』고 「버나드·쇼」가 말했다지만 우리나라에선 사람들이 너무 일찌감치 박애심을 잃게 되는가 보다. 모두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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