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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 라거, 향긋 에일 … 월드컵과 함께 열린 맥주 월드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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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호 11면

일찍 온 더위에 월드컵 경기까지 열리면서 맥주를 찾는 발길이 늘고 있다. 12일 롯데마트 서울역점 주류 코너에 각종 맥주들이 진열돼 있다. 최정동 기자

축구를 좋아하는 회사원 김치맥(35·가명)씨. 월드컵 개막을 하루 앞둔 12일 장보기에 나섰다. 매일 저녁 방영될 ‘월드컵 하이라이트’를 시원한 캔맥주와 함께 즐길 작정이었다. 간만에 찾은 대형마트 주류매대 앞. 김씨는 그만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크 에일 비어’ ‘물을 타지 않은 맥주’ ‘시원한 라거’ ‘밀로 만든 흑맥주’ ‘정통 독일식 몰트 맥주’…. 매대 곳곳에 나붙은 스티커와 카탈로그 문구는 그 뜻을 일일이 다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국산·수입산을 합쳐 어림잡아 300종도 넘는 제품들이 빨강·노랑·초록 등 형형색색 캔에 담겨 진열돼 있었다. 김씨는 “불과 몇 개월 새 맥주 종류가 무척 많아진 것 같다”며 “내 입맛에 가장 맞는 제품을 찾기 위해 종류별로 다양하게 장바구니에 담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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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주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맥주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1800년대 말 국내에 맥주가 처음 소개된 이후 2014년이 가장 역동적인 해”라고 말할 정도다.

 먼저 맥주 시장에 새로운 선수들이 뛰어들었다. ‘유통 공룡’ 롯데가 지난 4월 맥주 생산을 시작했다. 그간 국내 맥주 시장은 80년 가까이 오비와 하이트가 양분해 왔다. 한 해 4조원 시장을 놓고 본격 3파전 체제가 갖춰진 셈이다. 같은 달 국내 맥주 시장 점유율 1위 오비맥주는 벨기에의 세계 최대 맥주기업 AB인베브를 새 주인으로 맞았다. AB인베브 측이 밝힌 인수 금액은 6조1000억원. 카를로스 브리토 AB인베브 CEO는 “한국 내 공장을 증설하는 등 대대적으로 투자하겠다”며 공세를 강화할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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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제품도 다양해졌다. 롯데칠성음료 주류 부문이 내놓은 ‘클라우드’는 기존 제품들과 다른 공법을 택했다. 클라우드는 롯데그룹 내에서 ‘신동빈 맥주’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출시 과정에서 고위층의 지원과 기대를 받았다. 롯데칠성음료 맥주공장장 김봉석 이사는 “한 방울의 물도 첨가하지 않고 발효된 맥즙(麥汁) 상태 그대로 병에 담는 ‘오리지널 그래비티(Original Gravity)’ 공법을 사용해 거품은 풍부해지고 맛은 묵직해졌다”며 “기존 국산 맥주들과 같은 라거 계열이면서도 맛을 차별화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 우창균 주류마케팅부문 이사는 “클라우드가 출시 한 달여 만에 롯데마트와 홈플러스에서 각각 13.2%, 5.5%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순항 중”이라고 덧붙였다.

 ‘카스’를 앞세워 맥주 시장 점유율 60%를 차지하고 있는 오비맥주는 에일 계열 맥주 ‘에일스톤(Aleston)’으로 맞불을 놓았다. 에일스톤은 홉의 귀족이라고 불리는 ‘노블 홉’을 원료로 한 정통 영국식 에일 맥주로 흑맥주 특유의 쌉쌀한 맛과 부드러운 거품이 장점이다. 에일스톤은 출시 50여 일 만에 100만 병 이상 판매됐다. 오비맥주 변형섭 홍보이사는 “에일스톤이 주로 할인점과 편의점, 수퍼마켓 등 가정용 시장 위주로 판매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주목할 만한 수치”라고 설명했다.

‘폭탄’에서 맛으로 음주 취향 변화
하이트진로가 내놓은 ‘퀸즈에일(Queen’s Ale)’도 빠르게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퀸즈에일은 하이트진로가 맥주연구소 덴마크 알렉시아(Alectia)와 기술제휴를 맺고 3년간 연구한 끝에 만들어졌다. 이 제품은 주류품평회인 ‘2014년 몽드셀렉션(Monde Selection)’에서 국내 에일 맥주로는 처음으로 에일 부문 금상(Gold)을 수상해 품질을 인정받았다. 하이트진로는 신제품 ‘뉴 하이트’를 내놓는 등 라거 계열 상품군도 강화하고 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뉴 하이트는 알코올 도수를 4.3도로 낮추고 목 넘김을 부드럽게 한 신제품”이라며 “1996~2011년 국내 맥주 시장 최강자였던 하이트진로의 옛 명성을 되찾아줄 제품”이라고 기대했다.

 맥주 시장이 다양해진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음주 문화의 변화를 꼽는다. 그동안 맥주는 직장인 회식에서 ‘소맥(소주+맥주)’으로 다량 소비됐다. ‘카스처럼(카스+처음처럼)’과 ‘디슬이(드라이피니시d+참이슬)’가 보통명사처럼 쓰일 정도로 소맥은 음주 트렌드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 보니 순하고 시원한 라거 계열이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폭음형’에서 ‘음미형’으로 음주 문화가 바뀌는 데다 과음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맛있는 맥주를 찾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실제 2012년 이후 가정용 맥주의 출고량이 유흥업소용보다 많아지면서 업체들도 소맥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에일’ 계열 맥주를 잇따라 출시했다.

수입 맥주 시장은 10년 새 6.6배 증가
맛있는 맥주를 찾는 이가 늘면서 수입맥주 시장도 커지고 있다. 관세청이 12일 밝힌 ‘최근 10년간 맥주 수입 동향’ 자료에 따르면 맥주 수입 금액은 2003년 1370만 달러에서 지난해 8970만 달러로 10년간 6.6배 늘어났다. 같은 기간 전체 주류 수입 규모가 1.7배 증가한 데 비하면 맥주 수입의 증가가 두드러진다. 같은 기간 와인 수입 규모는 3.8배 증가했고 위스키는 오히려 30% 감소했다. 맥주 수입이 크게 늘면서 전체 주류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03년 3.3%에서 지난해 12.5%로 확대됐다. 맥주 수입 증가로 국내 성인 1명당 맥주 수입량은 2003년 1병(500mL 기준)에서 지난해 4.8병으로 증가했다. 2003년만 해도 한국이 맥주를 가장 많이 사오는 나라는 미국이었으나 2010년 이후로는 일본이 줄곧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맥주 수입 비중은 일본(31.2%)에 이어 네덜란드(12.6%), 독일(12.1%), 중국(8.2%), 아일랜드(8.1%)가 뒤를 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다른 나라에 비해 일본 맥주의 가격이 비싸지 않고 맥주 종류도 다양한 편인데다 바로 이웃 나라여서 물류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점도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수입맥주가 인기를 끌자 대형마트들도 직수입에 뛰어들고 있다. 현재 이마트가 직수입하는 맥주만 독일 5.0, 벨기에 마튼즈 등 9종. 롯데마트도 독일의 웨팅어와 함께 개발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들 ‘마트맥주’의 판매 비중은 지난달 9.2%를 차지했다. 마트맥주 수입 첫해인 2012년 2.7%에 비해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인 입맛에 맞는 맥주를 발굴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대형마트 한 관계자는 “주류 상품기획자들에게 맛있는 맥주를 발굴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상태”라며 “소비자 취향이 유럽 맥주 쪽을 선호하는 점을 감안해 신제품 발굴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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