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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에스키모」의 반려…극지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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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탐험대가 머물렀던 「카낙」은 북극권활동에 가장 중요한 개와 썰매를 조달하는 보급기지로 사람 수 보다 많은 5백여 마리의 개가 마을 구석구석마다 쏘다니거나 10여 마리씩 떼를 지어 묶여있었다. 개를 처음 보는 순간 대원들은 누구나 가까이 가기를 꺼렸다. 「셰퍼드」나 「도사」만큼 큰 덩치에 상처투성이의 험상궂은 얼굴, 걸핏하면 송곳니를 드러내고 싸움질을 하는 모습은 가축이 아니라 야성을 그대로 지닌 늑대처럼 보였다.

<썰매1대에 13∼15마리>
깊은 밤이 되어 어느 한 마리가 『우-』하고 울부짖기 시작하면 나머지 수백 마리의 개들이 하늘을 바라보고 같은 소리로 따라 합창, 80여 채 밖에 안 되는 온 동네가 떠나갈 듯 개들의 곡성이 밤새도록 그치지 않아 빙하가 무너져 내리는 굉음과 함께 극지의 밤을 더욱 무섭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같은 개는 「에스키모」생활에 필수적인 유일한 내륙 교통수단이자 한번간 길은 잊지 않아 대부분의 탐험대가 극지의 길잡이로 쓰며 사냥의 보조역을 하는 동업자이기도 하다.
썰매를 가진「에스키모」는 대부분 13∼15마리의 개를 기르며 이들 가운데는 항상 우두머리가 있게 마련이다. 왕초는 「에스키모」가 마음에 드는 대로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네들끼리 결정한다.
발정기인 봄이 되면 암놈을 사이에 두고 한패의 개들 사이에 혈투가 벌어져 최후의 승리자가 우두머리가 되어 암컷을 독차지하는 것은 물론 「에스키모」로부터도 특별대우를 받는다. 강한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한 자연의 법칙에 희생된 나머지 개들은 군림하는 왕초개의 그 눈치 속에 살아가는 것
썰매를 끌 때도 다른 개들보다 1m 앞서 양옆으로6∼7마리씩을 거느리고 개선장군처럼 달린다.

<싸움으로 우두머리 결정>
먹이를 한꺼번에 주었다가는 왕초혼자 먹어치워 다른 개들한테는 차례가 돌아가지 않는다. 2∼3일씩 굶고서도 포식하는 왕초에게 감히 덤벼들지 못한다. 참을성이 적은 개가 먹이를 보고 돌진하다가는 그 고기냄새도 맡기 전에 다리가 부러지거나 눈알이 빠지는 등 만신창이가 된다.
이 때문에 「에스키모」들이 먹이를 줄 때에는 고기를 일일이 같은 크기로 토막 내 상자에 담아 채찍과 함께 들고 가서는 개들을 한 줄로 늘어 세우고 개 입에 하나하나씩 던져준다. 이 작업을 하지 않고 통째로 가져갔다가는 부상자만 낼뿐이다. 「에스키모」들은 개를 몹시 잔인하게 다루었다. 먹이를 줄 때 다른 개의 것을 빼앗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몽둥이나 어린아이 머리 만한 돌로 마구 때리는가 하면 사람에게 덤비는 개는 그 자리에서 쏴 죽이거나 작업대에 매달아 버둥거리다 숨을 거두게 하는 것이 예사였고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먹이를 3일에 한번씩 밖에 주지 않았다. 썰매를 끌 때도 한눈을 팔다가는 등이나 엉덩이의 털이 풀썩 날아갈 만큼 아픈 채찍이 날아든다.
극지에서 생사고락을 같이하자면 개들도 사람처럼 가혹한 시련을 견디고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평소 그런 식으로 훈련을 하는 모양이었다.
썰매에 부채꼴로 붙들어 매인 개들은 우두머리 개가 이끄는 대로 질서 정연하게 움직여 「에스키모」가 썰매 위에 앉아서도 마음대로 몰고 갈 수 있었다.
개들의 습성도 가지가지 여서 오른쪽으로만 끄는 놈이 있는가 하면 항상 왼쪽에 치우쳐 비스듬이 쓰러진 자세로 달리기도 하고 한가운데서 앞쪽으로만 내닫는 놈, 흘끗흘끗 뒤돌아보며 『내가 이렇게 열심히 끌고 있으니 채찍을 휘두르지 말라』는 듯 눈치를 보는 놈, 암컷 쪽으로 슬며시 접근하여 시비를 걸다 앙탈을 부리면 멋적은 듯 제자리로 돌아가는 놈, 달리면서 대·소변을 내깔기는 놈, 한눈을 말다가 「에스키모」가 채찍을 높이 들기라도 하면 얻어맞기도 전에 비명을 지르며 무리 속으로 도망가는 놈…하루종일 개들의 짓거리만 보고 있어도 지루한 줄을 몰랐다.
막영지에 닿아 휴식을 할 때면 개들은 몇 시간씩 계속된 강행군으로 더워진 몸을 얼음 바닥에 뒹굴며 비비기도 하고 눈을 핥아 목을 축이기도 한다.
무거운 썰매를 끄느라 녹초가 된 개들은 줄을 풀어놓자마자 머리를 꼬리 쪽으로 틀어박고는 눈 위에 누워 잠들지만 힘이 조금이라도 남은 놈은 왕초 개가 잠든 틈을 타 혹한과 눈보라가 휩쓰는 얼음 벌판도 아랑곳없다는 듯이 상처투성이의 콧잔등을 곱상하게 생긴 암놈의 엉덩짝에 들이밀고는 양쪽 뒷발로 눈을 긁으며 수컷임을 뽐내려고 안달이었다. 운이 좋은 날은 어쩌다 성사가 되기도 하지만 도중에 왕초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달아나지도 못하고 앞뒤로 곤욕을 치르게 마련이다.
개들은 영하40도의 추위에도 얼음 바닥 위에서 거적하나 깔지 않고 그대로 잠을 잤고 이들이 자고 난 자리는 체온에 얼음이 녹아 뜨거운 물을 부은 것처럼 움푹 들어가 있었다. 5∼6㎝쯤의 짧은 털과 15㎝나 되는 긴 털이 2중으로 나 있어 긴 털로 바람과 한기를 막고 짧은 것으로 보온을 하는 것 같았다.

<영하 40절도 얼음 바닥에 자>
강아지도 다리가 어른 팔뚝처럼 굵었고 발목 부분이 특히 발달하여 눈 위에서도 미끄러지지 않고 썰매를 끌기에 안성마춤이었다.
날고기를 즐기는 「에스키모」들도 개는 잡아먹지 앉았다. 병들거나 늙어 허약해지면 길가에 아무렇게나 내버렸고 말을 듣지 않는 개를 죽이더라도 털가죽만 벗겨 깔개로 쓸 뿐이다.
『한국에서는 여름에 개를 즐겨 잡아먹기도 한다』며 맛있는 개고기를 왜 버리느냐고 묻자 『사람을 돕는 동물을 먹기 위해 죽일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에스키모」와 개의 사이는 한쪽이 없으면 어느 쪽도 살아갈 수 없는 극지의 반려 바로 그것이었다. <글 홍성호 기자·사진 김택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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