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워도 너무 쉬운 모의수능 영어 … 수강생 90%가 만점 받은 학원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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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서울 휘문고 교사들은 12일 치러진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 채점 결과를 취합하다 깜짝 놀랐다. 고3 재학생의 30%가량이 영어에서 100점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기 때문이다. 신종찬 휘문고 진학지도부장은 “수능이나 모의평가에서 영어가 이렇게 쉽게 출제된 적은 없었다”며 “학생들 사이에서 만점을 안 받는 게 비정상이란 말까지 나왔다”고 전했다.

 서울 강동고의 한 교사도 “평소 60~70점 받던 학생들이 이번에 80~90점대로 뛰었다”며 “시험이 너무 쉬우면 착시 현상으로 공부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재수 학원가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강남대성학원에선 수강생 2000명 중 약 90%가 영어 만점을 받았다.

 수능을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주관해 올 수능의 방향을 가늠하는 잣대로 인식되는 6월 모의평가에서 영어가 지나치게 쉽게 출제돼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쉬운 A형과 어려운 B형으로 나뉘어 치러진 영어는 올해부터 통합형으로 합쳐졌다.

 교육부는 오답률이 높은 빈칸 추론 채우기 문항 수를 7개(영어 B형 기준)에서 4개로 줄이는 방식으로 올해 수능 영어를 쉽게 출제하겠다고 앞서 발표했었다. 평가원 측도 “올 수능 영어는 지난해 A형과 B형의 중간 난이도로 내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모의평가를 치른 수험생들은 “쉬워도 너무 쉽다”는 반응이다. 상당수 입시업체가 영어 1등급 컷(1등급과 2등급을 구분하는 원점수)을 100점으로 예상했다. 만점을 받아야 1등급이 된다는 의미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은 “2012학년도 수능 영어에서 만점자가 2.67%(1만7049명) 나와 ‘물 수능’ 논란이 있었는데, 그때보다 더 쉬웠다”며 “수능도 이렇게 출제된다면 한 문제 틀리면 2등급, 두 문제 틀리면 3등급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영어가 변별력을 잃으면 수학의 영향력이 높아지게 되는데, 그렇다고 영어를 실수하면 치명적이라 소홀히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휘문고 신종찬 부장은 “영어의 변별력이 사라지면 탐구 과목이 변수가 될 수 있는데 탐구는 수험생들이 어떤 과목을 택하느냐와 과목별 난이도에 따라 유불리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학생들의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성권 한국교육정책교사연대 대표는 “입시제도가 바뀌지 않고 영어만 쉬워지면 수학·국어가 과열되는 풍선 효과가 나타난다”며 “정부가 수능 영어를 절대평가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현실화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조용기 평가원 수능본부장은 “9월 모의평가에서 등급 분포에 큰 왜곡이 없도록 조정하겠다”고 말했다.

김성탁·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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