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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전시관, 변전소→아트숍 변신 … 생기 돋는 폐광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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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정선군 그림바위마을 화동초등학교에 설치된 조형물. 황토와 돌을 이용해 담벼락을 꾸몄다.

미술의 힘을 빌려 부활을 꿈꾸는 마을이 있다. 볼품없던 담벼락에 그림을 채우고 공터에 조형물을 세워 벽화마을·미술마을이란 새 이름을 얻게 된 곳이다. 강원도 정선군 화암면에도 지난해 12월 ‘그림바위마을’이란 미술마을이 생겼다. 금광업 몰락 후 주민이 줄줄이 빠져나가 쓸쓸했던 마을이 미술과 만나 새 표정을 얻은 모습이 활기차 보였다.

1 마을 역사를 새긴 나무판으로 꾸민 옛 종탑과 금광촌을 테마로 한 미술관. 2 기념사진 장소로 인기 좋은 맷돌바위길. 3 그림바위마을 곳곳에 미술작품이 숨어 있다. 사진은 거북이 모양으로 탈바꿈한 전기계량기.

지난 가을 훌쩍 정선으로 떠났다. 외진 산골마을에 미술작가들이 모여들어 마을을 꾸미고 있다는 소문을 들어서였다.

부산의 감천문화마을, 경북 영천의 별별미술마을을 잇는 미술마을이 정선군 화암면 화암1·2리에도 탄생할 참이었다.

기이한 바위와 절벽이 많아 예부터 그림바위마을이라 불리던 화암1·2리가 그제야 제 본색을 드러낼 기회를 맞은 것이었다.

사실 화암1·2리의 전성기는 한참 오래 전 일이다. 금광 붐으로 수십 년 동안 호황을 누리다가 1980년 이후 폐광이 줄을 이으며 마을은 긴 침체기에 들어갔다. 이제 인구는 한창 때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 두 마을을 다 합쳐도 500명이 채 안 된다. 마을 곳곳의 빈집만이 옛 영광의 흔적으로 남아 있을 따름이다.

반전이 일어난 건 지난해 4월이었다. 화암1·2리가 문화체육관광부의 ‘마을미술프로젝트-행복프로젝트’에 선정된 것이다.

13억원(국비 5억원, 지방비 8억원)의 예산 아래 미술작가 49명이 지난해 9월부터 마을 전역에 흩어져 단장에 들어갔다.

지난달 중순 다시 화암마을을 찾았다. 지난해 가을과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그새 마을엔 ‘반월에 비친 그림바위마을’이란 거창한 새 이름이 붙어 있었다. 반달 모양의 화암1리를 중심으로 건넛마을 화암2리까지가 미술마을로 변신해 있었다. 조관용(51) 미술감독의 설명에서 마을에 다시 생기가 돌기를 바라는 주민의 염원도 함께 읽혔다.
“미술을 통해 마을주민과 관광객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림바위마을을 거니는 일은 마을의 삶을 헤아리는 일이었다. ‘1910년 화암약수 발견’ ‘1922년 천포금광촌 개발 시작’ 등의 문구로 낡은 종탑을 꾸민 작품에서 마을의 역사를 알 수 있었다.

버려진 채굴 기계를 근사한 조형물로 복원한 공간에서도 마을의 지난날이 엿보였다.

주민이 오르내리던 낡은 돌계단은 소금강을 여행하는 거북이를 테마로 삼은 부조 작품을 덧입혀 그럴 듯한 그림계단으로 탈바꿈했다. 담벼락에 원형 강판을 설치해 만든 키네틱 아트(움직이는 예술) 작품도 흥미로웠다.

원형 컬러강판을 화암 8경 모양으로 매달아 꾸민 담벼락은 바람이 일 때마다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엉뚱한 얘기지만 그림바위마을 담벼락엔 벽화가 없었다. 공들인 작품이 빗물에 벗겨져 되레 흉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부조 작품을 새겨 넣었기 때문이다. 주로 활용된 소재가 강판과 도자기 조각이었다.

빈집에도 변화가 생겼다. 옛 노래방은 모니터 150개를 갖춘 영상전시관으로, 옛 변전소 건물은 미술관과 아트숍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주민 권혁화(61)씨는 미술 마을을 위해 빈 가게를 무상으로 내놨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30년 넘게 약방을 하며 가족을 먹여 살린 곳이에요.
저도 이 마을의 아름다움을 누군가에게 선물로 남기고 싶어요.”

글·사진=백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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