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 북극을 가다|『한국 극지탐험대』 설상장정<3>|강풍-혹한의 시샘을 딛고 북위80도에 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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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극대장정 목표지점 공략을 위한 전진대는 북위79도3분, 서경62도2분5초, 고도1천2백40m의 대설원 위에 설치된 「베이스·갬프」를 예정보다 2시간 늦은 9월 6일 낮12시30분에 출발했다. 나와 도창호대원, 보도반의 김택현·이영진대원, 그리고 「에스키모」 3명으로 구성된 전진대는 초속10m가 넘는 바람속에 점점 흐려지는 기상을 걱정하며 2대의 개썰매와 「스노·모빌」에 나누어 탔다.

<"저기 산들이 보인다" 환성>
썰매에는 5일분의 식량과 무전기·항법기·보조장비·개식량·비상식등을 실었다. 전진대에 따라나선 「에스키모」는 「아이스·캡」에 올라 지금까지 5일동안 항상 앞서 달리던 「아와닥·캉왁」 (44)· 「내이맹이촉·크리스찬센」(21)과 그들의 개 27마리, 그리고 「스노·모빌」로 「캐나다」까지 횡단한 경험이 있는 「아론· 드넥」(32) 등이었다. 「베이스·캠프」에서 목표 지점까지는 직선거리로 1백10km. 표지기가 1백10개가 필요했으나 사용하고 난 나머지를 모두 챙겼는데도 1백개 밖에 되지 않아 10여개가 모자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한번의 휴식도 없이 개썰매로 달리기 5시간, 진북에서 오른쪽으로 30도 기울어진 방향을 잡고 썰매를 몰던 우리는 멀리 왼쪽으로 산들이 보인다는 「에스키모」 들의 환성에 썰매를 세우고 망원경으로 확인해 보니 멀리 서북쪽으로 「캐나다」 「엘즈미어」 열도의 뾰족뾰족한 산들과 북쪽으로 밋밋한 「그린란드」 최북단의 해안선을 이룬 연봉이 구분되어 보였다.
하오9시 「베이스·캠프」로부터 65km떨어진 곳에 「캠프」를 설치했다.
9월7일. 오늘은 어제보다 더 진북쪽으로 치우친 20도 방향으로 진로를 잡았다. 10도의 기울기는 거리가 5km줄어 앞으로 40km만 가면 북위 80도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일찍 도착하여 미리 「아이스·케룬」 (얼음탑)을 쌓아둘 작정으로 서둘러 출발했다. 낮 12시40분쫌 앞서가던 도창호 대원으로부터 구름 사이로 해가 보이니 위치 확인을 위한 천체관측을 할 수 있겠다는 무전 연락을 받고 급히 항법기재를 꺼냈다.

<불안해하는 「에스키모」들>
우리의 위치는 예정 좌표에서 남동쪽으로 약7km의 오차가 있었다. 썰매의 속도로 보아 l시간이면 조정할 수 있는 거리여서 개의치 않고 전진하기로 했다.
하오6시30분쯤 예정한 40km를 주파했으나 해가 보이지 않아 위치를 확인하지 못한 채 10km를 더 가기로 했다. 표지기는 이미 다 써 버렸고 눈보라에 초속 15m의 강풍이 겹치자 대원들은 더 이상 전진한다는 것은 위험을 자초할 뿐이며 막영을 하면서 날이 맑아지기를 기다리자고 했다.
「에스키모」들도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나침반이 계속 잘 듣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에게 안전함을 강조, 전진을 계속했다. 「크리배스」 지대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치곤 했으나 내가 타고 있던 썰매가 전진 방향과 나란히 갈라진 너비 1m쯤의 「크리배스」에 빠져 비스듬히 기울어지고 말았다. 지도와 나침반·무전기등을 들고 있던 나는 갑작스런 충격으로 아래로 굴러 떨어져 자칫하면 「크리배스」 속으로 빠질 뻔했다. 아뜩한 느낌이 든 것도 한 순간, 「크리배스」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항법기와 망원경등을 잡으려고 정신없이 기어갔다.

<위치 식별못해 10km 더가>
나 혼자의 생명보다도 전체 대원을 위해서 더욱 귀중한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 항법기를 그대로 「크리배스」에 묻어 버릴 수는 없었다. 손에 닿는대로 마구 움켜쥐었다. 앞에서 썰매를 몰던 「에스키모」 「아와닥」 이 『김믹!』 『김믹!』 외치는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려보니 다행히도 「크리배스」에 빠진 것은 없었다 (「김믹」은 「에스키모」말로 구두 뒤꿈치를 말하며 그들은 내 성이 김이라는 데서 이렇게 불렀다).
조심조심 전진을 계속한 전진대는 하오8시30분 예정보다 11km 더 나아간 곳에서 「캠프」를 쳤다. 고도는 8백mm로 80도 선을 넘어선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했으나 태양이 나타나지 않아 정확한 위치 산출은 내일로 미루었다. 밤사이 기온은 영하37도까지 내려갔다. 머리가 갈라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이같은 강추위에서는 바위처럼 딱딱해진 얼음을 잘라 탑을 쌓는 것이 더욱 어려워 내일의 일정이 걱정되었다.
9월8일 8시기상. 다행스럽게도 날씨가 맑아져 태양이 빛났다. 「베이스·캠프」와 교신을 시도했으나 상태가 나빠 「카낙」의 이동 무선국을 통해 간단히 우리의 도착을 알렸다. 대원들의 환호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남은 대원의 환호 은은히>
관측 결과 예정 위치에서 북동쪽으로8·3km 떨어진 북위80도2분6초, 서경59도4분으로 우리의 위치가 산출되었다. 목표 지점보다 4km를 더 북쪽으로 올라선 곳이었다.
「케룬」을 쌓고 태극기와 「덴마크」 국기등을 3m의 쇠 「파이프」 에 달아 올렸다. 거센 바람과 혹한이 잠시도 쉬지 않고 괴롭혔지만 대원들은 추위도 잊고 한동안 펄럭이는 태극기를 바라보며서 있었다. 만년 빙하위에 영원히 남아 있을 저 태극기. 한국인이 이곳까지 왔다는 징표로 남겨 둔 우리의 깃발은 「그린란드」의 빙하를 길이길이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오면서 고전을 겪었던 난 「코스」 와 얼음 벌판에서 함께 고생하다 「베이스·캠프」에 남아 우리의 성공을 기다리는 대원들의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빨리 돌아가자는 「에스키모」 의 재촉에 시계를 보니 「케룬」 앞에서 2시간이나 머물러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중앙일보· 동양방송 사기와 대한산악연맹기· 한국 극지탐험대기를 「케룬」 속에 묻고 아쉬움에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베이스·갬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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