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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비 쏟아져도 과업 받아적는다 … 북한식 '적자생존'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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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동해안 ‘8월25일수산사업소?를 방문한 김정은. 간부들이 수첩을 꺼내 들고 비를 맞아가며 김정은의 지시사항을 받아 적기에 여념이 없다. 왼쪽부터 이영길 총참모부 작전국장, 장정남 인민무력부장, 김격식 총참모장, 최용해 총정치국장, 손철주 총정치국 부국장(이상 당시 직책). [노동신문]

김정은 권력을 떠받치고 있는 북한 파워엘리트들은 지금 ‘적자생존’에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설명하며 인용한 적자생존(適者生存)이 아닙니다.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북한식 생존전략을 의미합니다. 늘 수첩과 펜을 갖고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교시를 받아 적는 간부만이 권력에서 밀려나지 않고 자리보전을 할 수 있다는 얘기죠.

 군부대나 공장·기업소를 방문한 김정은의 이른바 현지지도 사진에 이런 모습은 생생히 드러납니다. 밀착수행하는 노동당과 군부 핵심 간부는 예외 없이 수첩을 펼쳐 들고 있습니다. 폭우 속에서도 수첩이 젖는 줄 모르고 깨알메모에 여념이 없습니다. 걸음을 재촉하는 김정은을 뒤따르면서도 필기를 위한 손놀림을 늦추지 못합니다.

 최고실세인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이나 건축부문 총책인 마원춘 국방위 설계국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와 여동생 김여정 정도가 열외입니다. 이쯤 되면 수첩을 들지 않는다는 건 평양 로열패밀리로 불리는 김씨 일가의 특권으로 보입니다. 얼마 전 한 매체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한 40대 여성이 함께 찍은 사진을 싣고, 딸 설송이라고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확인 결과 여성은 평양백화점 관계자로 드러났죠. 그녀의 손에 들린 수첩과 펜도 그가 설송이 아니라는 판단근거가 됐다고 하는군요. 대북정보 관계자는 “김정일 유훈(遺訓)에 따라 김정은의 보이지 않는 후견 역할을 하고 있는 설송에게 수첩은 어울리지 않는 소품”이라고 귀띔합니다.

 지난해 12월 장성택(국방위 부위원장) 처형 이후 ‘적자생존’ 현상은 극심해졌습니다. 어린 조카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맞은 건 바로 ‘건성건성’이란 괘씸죄에 걸렸기 때문이란 판단이 깔려 있다는 겁니다. 김정은에게 박수를 건성으로 치고, 다들 주목하고 메모에 열중하는데 흐트러진 모습을 드러낸 거죠. 무자비한 숙청을 지켜본 간부들에게 수첩과 펜은 공포심을 이겨낼 부적처럼 인식되고 있는 듯합니다.

 30세 청년 지도자가 아버지뻘 되는 간부를 지나치게 하대한다는 주민 반감도 생기지 않을까요. 모두 비를 맞는데 혼자 우산을 쓴 김정은의 사진을 놓고 인터넷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는 네티즌의 비판여론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노동당 선전선동가들의 판단은 다른 듯합니다. 이런 장면을 연출해 주민들이 ‘노간부들을 김정은이 꽉 장악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는 겁니다. 간부들을 세워놓고 호통치거나 줄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노동신문 등에 공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수첩에는 주로 어떤 내용이 담길까요. 북한 매체의 보도에서 일부 드러나듯 ‘건설공사를 언제까지 마치도록 하라’는 시한제시와 ‘자재·장비와 인력을 최우선적으로 투입하라’는 등이 주를 이룹니다. 김정은은 특정 날짜를 던지면서 “그때 다시 와서 보겠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죠. 건설속도를 올리고 생산을 늘리라고 지시하면서 “이건 내가 직접 주는 과업입니다”라는 친필서한을 내려 보내면 현장책임자들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할 겁니다.

 목표를 달성한 군 건설부대 등에는 격려와 포상을 합니다. 수천 명 군인과 단체사진을 찍기도 하죠.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가 최근 펴낸 『북한현대사』에서 “사진촬영은 최고지도자와 자신의 운명을 하나로 여기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며 과거 김정일 위원장의 군대장악 과정을 분석한 데서 그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성에 차지 않으면 질책이 쏟아지죠. 롤러코스터 방식으로 일컬어지는 군 장성의 계급강등이나 좌천인사가 뒤따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김정은의 곁에는 쓴소리를 할 사람이 없어 보입니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장성택에 이어 고모 김경희마저 권력전면에서 퇴장했으니 말입니다. 든든해 보이던 최용해마저 총정치국장에서 당 비서로 밀려 예전 같지 않습니다. 서슬 퍼런 태조 이성계 앞에서 ‘백성을 위한 나라’를 꼿꼿하게 주장하던 정도전 같은 인물이 북녘 땅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북한판 ‘적자생존’은 관료주의의 폐단인 복지부동(伏地不動)을 낳습니다. 주민을 위해 일해야 할 관료들이 눈치만 살피고 소극적으로 임할 때 주민들의 삶은 더 고단해질 수밖에 없겠지요.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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