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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싶은 이야기들<?자 황재경>|<제60화>「미국의 소리」황재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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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학시절에 나는 웅변에도 남다른 취미를 가졌다. 한번은 경성시내 11개 전문학교 대표들이 모여 웅변대회를 열기로 작정했다. 일제의 압제하에 있었던 학생들은 기회있을때마다 울분을 토하려고 했다.
웅변대회를 열려고 공회당까지 빌어놓았으나 당국의 허가가 문제였다.
당시 그런 교외집회는 경찰의 허가가 떨어져야 가능했다. 나는 본정경찰서(현 중부경찰서)에 찾아가 허가원을 제출했으나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고사계에서는 조선사람들에게는 대중을 모아놓고 연설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우리 민족에게는 열사람 앞에서 말할 수 있는 자유도 없고 나고 분한 마음이 들었고 어떻게하면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을까 궁리하게됐다.
기회는 우연찮게 찾아왔다. 새로생긴 경성방송국에서 만담 「프로」를 맡게된 것이다. 경성방송국은 내가 연전3학년때인 1927년2월16일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전파를 발사했다. 지금처럼 「프로그램」이 짜임새도 없었고 본격적인 「코미디·프로」도 없었으나 한국전래의 야담이나 만담시간은 있었다. 물론 녹음방송이 아닌 새방송이었기 때문에 여러가지 낭패스런 일도 있었다.
나는 입심이 좋았던데다가 동물 울음을 잘 흉내냈고 특별히 닭 우는 소리는 진짜 뺨치게 흉내냈다. 방송국에서 특기 자랑을 했더니 대뜸 1주일에 한번씩 만담시간을 맡겼다. 게다가 조선일보사가 주최한 「야담과 만담의 밤」에서 인기를 얻고나자 나는 꽤유명한「코미디언」이 된 기분이었다. 그때 신정언이 야담으로 인기를 끌었다. 결국 『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나로 하여금 수십년 동안 방송말장이를 만든것이다.
나는 서양 선교사들의 서투른 우리말음 흉내내 익살을 떨기도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웃음이나「유머」는 서민들이 즐겨쓰는 덕담에서 흔히 터지지만 대중을 장대로 한 방송에서는 그럼 수가 없어서 나대로 만남 자료짜기에 골몰했다. 1945년 을서년 정월 초하루 저녁 방송 때였다. 을유년이 닭의 해라 우선 닭우는 소리부터 한바탕하고 닭에 관한 얘기를 이끌어 갔다.
닭이 두번 울기 전에 예수를 세번 부인한 「베드로」 (마가복음15장66절) 가 회개하여 하루에 3천명씩 전도했다는 성경얘기를 하고는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세상에 의인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해버렸다. 왠걸 이튿날 고등계 형사가 찾아와 나를 헌병대로 데려갔다. 그들은 세상에 의인은 없고 죄인 뿐이라고 한내말을 트집잡아『그렇다면 천황폐하도 죄인이란 말이냐』고 문초했다. 마치 대역죄인이라도 다스리는 듯이 딱딱거리는 것이었다. 잠시 기가 막혔지만 정신을 가다듬어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고 말한 것은 사실이나 천황을 괴인이라고 하지는 않았다고 부인했다.
나는 목청을 높여 『천황폐하야 살아있는 신(현가신)으로 섬기는데 내가 사람이 죄인이라고 했지 어디살아있는 신을 죄인이라고 했느냐. 천황폐하를 인간으로 보는 당신네들이야말로 무엄하기 짝이 없다』고 일갈하자 형사들은 어안이 벙벙해 했다. 그들은 아무 소리도 못하고 나를 곱게 방면해주었다. 형사녀석들이 아무리해도 방송말장이의 말솜씨를 따를가보냐.
그날 초저넉 내가 닭우는 소리를 흉내내 방송하자 장안의 닭들이 따라 울었다. 좀 허풍같기도 하지만 방송국 사람들이 나에게 들려준 얘기다. 정월초하루·초저녁 닭이 울었다고 올해에는 무슨 일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장안에 나돌았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해 8윌15일 우리는 해방을 맞았다.
흉내내기때문에 봉변을 당할뻔한적은 여러번이다. 연전을 졸업하던날 우리는 명월관에서 사은회를 열었다. 으레 그렇듯이 내가 도맡아 좌중을 웃겼는데 선교사흉내를 한참 내다가 체조선생흉내로 넘어갔다. 그 선생님은 출석을 부를 때 공립학교에서 진학한 학생들이『하이』라고 대답하면『이놈들아,「하이」가 뭐냐. 네놈들은 동경에서 꿔온 놈들이냐』고 하곤 했는데 그 흉내를 익살맞게 냈다. 얼마뒤에 「보이」가 들어와 누가 좀 보잔다고 전했다. 종로구형사였는데 대일본제국을 모욕했으니 경찰서로 가자고 했다. 경찰서에 연행되니 내 이름을 알고 있던 몇몇 형사가『당신이「라디오」에서 우스운 얘기를 하면 우리마누라는 웃다가 허리가 부러질 지경이요』라고 반기면서 사은회때 했던 만담을 해보라고 했다. 나는 옳타꾸나 하고 처음부터 흉내내기를 했더니 온형사실이 웃음바다가 됐다. 나를 연행해왔던 형사도 겸연쩍게 웃다가 앞으로는 말조심을 하라면서 나가라고 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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