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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택 기자의 '불효일기' <29화> 시한부, 끝이 아니다 -1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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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3일. 지방선거를 하루 앞둔 그날을 난 잊을 수 없다.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일찌감치 대학병원으로 가게 됐다. 아버지는 검사를 받고난 뒤였다. 이어서 진행될 진찰을 앞두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잘 결정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불렀다. 지금 내 상태에 대해서 잘 물어봐라. 지난번 진찰 때 교수님의 뉘앙스가 더 쓸 약이 없다는 투였어. 정확하게 물어보고, 앞으로 내가 쓰러질지도 모르니 대안을 짜라.”

지난 번 진찰 때 주치의 교수는 아버지에게 “보호자가 같이 왔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괜찮으니 내게 이야기해 달라”고 말해서 설명을 들었는데, 어째 설명을 덜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은 함께 진찰실에 가게 된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진찰실에 들어갔다. 아버지는 진통이 심해지는데 어떻게 하면 좋으냐는 이야기를 했다. 교수는 먹는 진통제는 더 올리기가 어려우니, 일단 붙이는 진통제의 용량을 올리겠다는 말을 했다. 힘들면 먹는 약을 두 알 먹어보라는 말도 함께 했다.

아버지는 어깨가 결린다는 증상을 호소했다. 그것은 단순한 담이 아니라 암으로 인한 것이었다. 교수는 사진을 보여줬다. 아버지의 폐를 둘러싸는 늑막이 커져서 ‘등이 조여드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폐의 암이 퍼지면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이를 막기 위한 방책으로서 늑골에 방사선 치료를 했지만, 늑막이 전체적으로 자라는 것을 막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동안 많은 약을 썼고, 항암제를 거의 다 써봐서, 항암제 하나를 마지막으로 써본다는 말을 했다. 주1회 하루 4시간씩 맞는 항암제라고 한다.

아버지는 질문을 다 하셨다. 나는 아버지께 잠깐 나가서 기다려 달라고 했다. 교수님과 독대를 했다.

나: 교수님, 저희 아버지는 치료를 할 수 있는 겁니까.
교수: 저 개인적으로는 안 했으면 해요. 쓸 약은 다 써봤고. 그런데 아버님이 워낙 의지가 있고, 상태가 경쾌하니깐. 마지막으로 해보는 것이죠. 그리고 심적으로도, 당장 치료를 중단하겠다고 하면 충격을 받으실 수 있어요. 천천히 시간을 좀 갖자는 취지로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약을 더 써보는 측면도 있습니다.
나: 진통이 심해져 갑자기 쓰러지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아버지가 진통만 없어도 좋겠습니다.
교수: 우선은 진통제를 조금 올렸고, 못 참을 정도라면 아버님을 모시고 응급실에 오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조절 가능한 진통이면 진통제 투여 등 진료를 할 수도 있고요.
나: 근처 A병원에 호스피스 병동이 있던데요. 대기자도 있고, 우선은 외래진료도 봐야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던데요.
교수: 얼른 그 병원에 외래 진료를 보시지요. 거기도 (진료를) 잘 합니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셔야 할 때가 되면 제가 필요한 자료를 넘기면 됩니다.

그리고는 묻기가 어렵지만, 꼭 물어보고 싶은 것도 물어봤다.

나: 교수님, 그러면 아버지는 얼마나 살 수 있을까요.
교수: 암이 빠르게 자라고 있어, 올해 못 넘길 것 같습니다.
나: 다른 환자들 보면, 돌아가시기 전에 먼저 쓰러지시던데요. 저희 아버지는 언제 쓰러지시는 겁니까.
교수: 2달 정도 뒤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버지와 나왔다. 나는 일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먼저 회사로 돌아왔다. 버스에서 정말 많이 울었다. 대낮에 버스에서 30대 아저씨가 울고 있는 모습을 이상하게 보고 있을 시민들도 많을 것이다.

아버지는 항암치료 후 집으로 잘 들어가셨다고 한다.

며칠 뒤, 부모님과 함께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아내도 함께였다. 어머니는 된장국과 고기를 준비해 주셨고, 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했다.

밥이 익기 전, 어머니는 아버지와 산책이나 다녀오는 것이 어떠냐고 했고, 우리는 잠깐 집 근처 공원에 갔다. 비가 갠 뒤 날씨도 좋았고 바람도 솔솔 불었다. 이 좋은 날, 아버지의 마음은 어떨까. 벤치에 앉았다.

아버지는 “지금 맞는 약이 가짜 아니냐”고 다짜고짜 이야기했다. 물론 순하게 조제했기는 하지만 가짜일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이 이제 가망이 없는데, 충격을 받을까봐 가짜로 약을 조제한 것이라는 의심을 하는 모양이다. “그럴 리는 없다”고 했다.

아버지께 이야기했다.

“아버지, 아버지는 언제 몸 상태가 나빠질지 모릅니다. 언제 쓰러질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하고, 아버지는 밥을 잘 챙겨드셔야 합니다. 선배들 이야기 들어보니, 잘만 하면 1~2년 정도 더 사는 환자도 많다고 합니다. 더도 말고, 손주만 보고 가세요.”

아버지도 자신의 상태에 대해 약간은 알고 있는 듯 했다. “최근 한 달 사이에는 내가 암환자인 것이 실감이 난다”는 말로 대신하셨다. 하긴 암 환자가 느끼는 몸 상태보다 정확한 것은 없을 것이다.

의사들의 말은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겠지만, 내 주변에 있는 지인들의 이야기만 들어봐도, 식사 잘 하고 몸 관리를 잘하면 1~2년 정도는 더 사신 어르신들 이야기가 꽤 있다.

나 역시 욕심을 부리고 싶지는 않다. 딱 1년, 더도 말고 1년만, 아버지와 추억을 쌓을 시간이 필요하다. 내게 1년이 허용될지는 미지수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최소 두 달이 있다. 의사가 이야기했던 거동 가능한 최소 기간이다. 물론 나와 어머니 등 가족들이 아버지를 잘 챙긴다면 두 달이 1년 이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믿어본다. 두 달 동안 아버지와 뭘 더 할 수 있을까. 당장은 잘 모르겠다. 자주 찾아뵙고 다리와 등을 안마해 드리는 것이 최선일 것 같기는 하다.

속상하다.

* ps. 아버지는 요즘 들어 자신의 생존 목표 기간은 8월 23일까지라고 말한다. 앞으로 50일 정도 뒤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기일이라고 한다. 기일에 맞춰 할아버지 묘소에 다녀오고 싶다고 한다.

* ps2. 신부님께 말씀드리니, “그래도 생명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니깐 주님께 맡겨드리고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리자”라고 하셨다. 하지만 더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자식의 마음이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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