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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중의 은신처가 된 암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전국 산림지역 안의 암자·기도원 등 불법·불량건물들에 대해 내무부가 일제 정비명령을 내렸다.
산골짜기 아름다운 숲 사이에 독버섯처럼 솟아난 무허가 건물들은 자연환경을 훼손할 뿐 아니라 떠돌이 중의 은신처 또는 사이비 종교의 본거지가 되어 미신풍조를 조장하고 범죄인의 도피, 풍기문란 등 각종 사회악의 온상이 돼왔다. 더구나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선거기간을 틈탄 불법·무허가 건물의 난립은 한국 전후사회의 보기 흉한 악순환의 하나가 돼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악순환은 선거기간이라 당국의 단속이 심하지 않을 것이라는, 무법 조장 사상마저 낳게 했고 이것은 의당 그렇고 그런 것이려니 인식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충남 계룡산일대를 비롯해, 전북 모악산, 전남 무등산, 그리고 서울 변두리 계곡, 특히 정릉 골짜기 일대는 사이비 종교의 「메카」처럼 되어있다.
관계당국의 통계를 보면 전국 7천 4백 16개의 사찰과 암자 중 당국에 등록된 것은 2천 5백 19개 뿐으로 4천 8백 97개가 미등록이라고 한다.
또 전국의 「그린벨트」 안에는 모두 42만 6천여 채의 건물이 있으며, 상당수가 불법 건물로 암자·기도원으로 사용되고 있다한다.
불법 기도원이나 암자 등은 국립 및 도립공원이나 경치 좋은 명산, 도시주변의 등산로 등에 산을 깎아 석축을 쌓고, 야금야금 터를 넓히며 암굴을 뚫고 움막 같은 곳에 제단을 마련하기도 한다.
또 바위를 깎아 해괴한 잡신상을 만들고 그 위에 울긋불긋 「페인트」칠을 해 자연경관을 송두리째 버려놓는다.
우리는 따라서 이번 단속을 통해 이런 자연훼손 대상물들이 모조리 단속되기를 바라는 바이지만, 한가지 우려되는 것은 일제 단속을 하더라도 실적위주의 형식적인 단속으로 그쳐서는 안될 것이라는 점이다.
또 단속과정에서의 난폭한 행동도 있어서는 안되겠다.
작년 4월 20일 무등산 무당촌에서 일어났던 불행한 충돌사건을 우리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무허가 철거반원 4명이 23세의 청년에게 목숨을 빼앗기는 참극이 벌어졌었다.
이때도 실적위주의 과잉단속이 문제가 되었지만, 철거지역이 유사종교의 온상인 만큼 더군다나 꾸준한 행정적 계도가 강제철거에 앞서 충분히 있어야 마땅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내년 4월말까지 불법·불량 건물들을 소유자나 관리인으로 하여금 자진 철거토록 권장하고, 허가 받은 건물이라도 자연경관을 해치는 부분은 보완 조치하도록 한 것은 일단 신중을 기한 배려로 볼 수 있다.
그래도 자진철거를 하지 않을 때는 제2단계로 산림법, 건축법, 공원법, 임산물 단속에 관한 법률 등을 적용, 엄벌할 것이라 한다.
내무부는 이에 앞서 오는 11월말까지 산림 안에 있는 불법건물을 일제히 조사, 정화한다고 하는데 차제에 불법건물 대장을 만들어 정확히 실정을 파악하고 어느 것이 사이비인가도 명확히 구별, 지도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겠다. 원래 암자란 등록된 종교단체의 자격 있는 승려가 외계와의 접촉을 끊고 수도를 위해 은신 칩거하는 도장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이와 함께 우리는 등산로나 명승지의 바위 등에 무질서하게 써놓은 낙서, 조잡한 안내판, 보기 흉한 「시멘트」 구조물 등도 일제히 점검하여 보수·정비해주기 바란다.
자연환경보호라는 넓은 차원에서 시행되는 이번 정비에는 내무부 산하 공무원뿐 아니라 국민 모두의 자진 참여가 있어야 보다 높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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